[신학칼럼] ‘서머나’ 교회를 통해 읽는 다락방 전도운동에서 ‘미래교회’의 가치

[신학칼럼] ‘서머나’ 교회를 통해 읽는 다락방 전도운동에서 ‘미래교회’의 가치

윌리엄 헨드릭슨(William Hendriksen, 1900–1982)은 20세기 개혁주의 성경학계를 대표하는 신약학자이며, 특히 요한계시록 해석으로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학자이다. 그는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앤서니 후크마(Anthony Hoekema)와 함께 20세기 네덜란드계 개혁주의 전통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가 제시한 요한계시록 해석 방법은 점진적 평행법(Progressive Parallelism)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다양한 환상들이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과정을 반복적으로 보여 준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오늘날 많은 개혁주의 무천년설 학자들에 의해 수용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특히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지난 2천 년 동안 나타난 교회들의 모습을 모델적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필자가 살펴보고자 하는 교회는 그중 예수님께 책망 없이 칭찬을 받았던 교회 가운데 하나인 서머나 교회이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받은 계시에 따르면, 일곱 교회 가운데 다섯 교회는 책망을 받았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정통 교회”(계 2:1-7)라는 책망을 받았다. 버가모 교회(계 2:12-17)는 박해는 이겼지만 타협에 무너진 교회였다. 곧 발람의 교훈(세상 문화와의 타협)과 니골라당의 교훈(도덕폐기론)을 따른 일이 문제였다. 두아디라 교회(계 2:18-29)는 성장한 교회였으나 세상 문화와 영적으로 깊이 타협해 버린 교회라는 책망을 받았다. 사데 교회(계 3:1-6)는 아무런 칭찬도 없이 가장 신랄한 책망을 받았는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외형적으로는 나름 잘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영적인 무기력에 빠진 교회였던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영적 자만에 빠져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 두었던 교회(계 3:20)로, “미지근하여 입에서 토하여 버리고 싶은 교회”(계 3:16)라는 책망을 들었다.

이와는 달리 서머나 교회는 ‘작지만’ 크게 ‘칭찬받은’ 교회였다. 규모는 작고 가난했지만, 서머나 교회는 주님께 칭찬받은 좋은 교회였다. 서머나 교회(계 2:8-11)는 황제 숭배의 중심지이자 로마에 가장 충성된 도시 가운데 하나에 세워진 교회였다. 서머나 교회를 이끌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순교자 폴리캅이었다. 당시 서머나 지역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일화에 따르면 로마 총독이 “그리스도를 저주하라”라고 명령했을 때, 폴리캅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지만 그분께서 나를 해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 (《The Martyrdom of Polycarp》, 「폴리캅 순교기」)

그는 끝까지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았고 결국 순교하였다. 이것이 바로 서머나 교회의 실제 모습이었다.

서머나 교회를 살펴보면 첫째, 환난 가운데 있었던 교회였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계 2:9). 서머나 교회는 극심한 박해를 받던 교회로서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함으로 경제적 불이익과 사회적 배척을 당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서머나 교회를 “가난하지만 부요한 교회”(계 2:9)라고 인정하셨다. 세상적으로는 가난하였지만 믿음과 은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 안에서는 부요한 교회였다.

둘째, 사탄의 공격을 받던 교회였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아닌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계 2:9) 서머나 교회는 유대인들의 고발과 핍박 속에서 고난을 겪었다. 예수님은 이를 “사탄의 회당”이라고 부르셨다.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믿음의 순결성을 잃지 않았던 아름다운 교회였다.

셋째, 죽도록 충성한 교회였다(계 2:10). 서머나 교회는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 순교적 교회였다. 그래서 순교자 폴리캅이 감독으로 섬기던 교회로 알려져 있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교회였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의 형편을 모두 알고 계셨기에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계 2:9)라고 위로하셨다. 그러면서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계 2:10),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는 격려와 함께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는 소망을 약속하셨다.

정리하면, 서머나 교회는 ① 환난은 있었으나 믿음을 잃지 않은 교회였고, ② 가난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요한 교회였으며, ③ 핍박은 있었으나 타협하지 않은 교회였고, ④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충성한 교회였다.

교회의 본질은 외형적 성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신실한 데서 찾아진다. 서머나 교회는 단순히 외적 성장이라는 잣대로만 본다면 ‘보잘것없는’ 교회로 비쳐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하고 박해받은 서머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 가장 큰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현재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미래교회들이야말로 서머나 교회의 모습에서 중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연약하고 어려움 속에 있으면서도 훈련에 참여하며 묵묵히 전도운동의 흐름을 이어 가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우리 단체의 용어를 빌리자면 ‘미래교회’들이다.

길게는 지난 30여 년, 짧게는 수년 동안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흔들림 없이 전도와 선교 사명을 감당해 온 교회와 전도자들이 있다. 이름도 빛도 없는 전도자들과 그들이 섬기고 이끄는 ‘미래교회’들이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다락방 전도운동의 건강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자랑스러운 교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복음에 대한 감사와 감격 하나로, 그리고 성경적인 전도운동에 헌신하며, 소문과 핍박적인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237나라 5천 종족 복음화의 여정을 걸어가는 자랑스러운 미래교회들이다. 미래교회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교회라는 시각을 넘어, 다락방 전도운동의 생명적 가치를 가장 잘 보여 주며, 전도운동의 순수성을 담보해 주는 교회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소리 내지 않아서 아름답고, 흔들리지 않아서 더욱 귀하며, 현실의 열매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사명을 감당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교회들이 아닌가?

다락방 전도운동은 237나라 5천 종족 복음화를 위한 걸음을 오늘도 중단 없이 이어 가고 있다. 바야흐로 5천 종족의 큰 문이 열리면서 새로운 선교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전도운동의 건강성은 앞서가는 교회들을 통해서뿐 아니라, 큰 역사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주어진 현장에서 묵묵히 복음운동을 펼치고 있는 무명의 전도자들과 미래교회들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깊어진다고 믿는다.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모든 교회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서머나 교회가 받았던 그 칭찬을 함께 받는 교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수영 목사(Ph.D., RTS 조직신학)

[7월 중보기도]

7월 중보기도 대부분 사람들이 승승장구하는 응답을 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성경 속 렘넌트들의 인생을 보면 어려움은 필수 코스였고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은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