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칼럼] 개혁파의 예정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교파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나요?

[신학칼럼] 개혁파의 예정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교파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나요?

[신학칼럼] 개혁파의 예정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교파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나요?

글을 시작하면서
한 주간 해외신학교에서 개혁파 구원론 강의를 마치고 난 뒤에, 그 강의를 들었던 외국의 한 장로님이 진지하게 물었다. “개혁파의 예정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교파 사람들도 과연 구원받을 수 있나요?” 본 글은 필자가 그 질문에 답했던 것을 바탕으로 개혁파(개혁주의) 구원론의 특징과, 타교파 사람들의 구원에 관한 신학적 입장을 간단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1. 하나님의 단독 사역과 유효한 부르심
개혁주의(개혁파)는 구원을 말할 때, 인간의 의지나 협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러한 구원사역을 신학적 용어로 하나님의 단독사역(monogystic) 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협력이나 다른 어떤 것의 도움도 필요 없이, 오로지 하나님의 자유로운 뜻을 따라 구원받을 자를 택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중생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으로, 믿음에 앞선다는 주장과도 연결되는 것이며, 구원론에 있어서 개혁파와 다른 교파들 간의 명백한 차이를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 대해 장로교 신앙(신학) 표준 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0장 2항은 이렇게 밝힌다. “이 유효한 부르심은 하나님의 자유롭고 특별한 은혜로만 되는 것이요, 결코 사람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미리 보신 것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고 새롭게 되어 이 부르심에 응답하며 그 안에 제시된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는 이 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개혁파 신학의 대가인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역시, 중생이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 이전에 일어나는 초자연적 사역임을 분명히 한다. 그에 따르면, “중생은 하나님의 사역이다. 그것은 인간 안에서, 인간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신다”(Herman Bavingck, Reformed Dogmatics, Vol. 4, Baker Academic, p. 92)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혁파신학에서는 구원은 하나님의 단독사역으로 이해하며, 신인협력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이나 알미니안의 구원 이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믿음은 구원의 조건인가, 단지 도구적 수단인가?
17세기에 개혁주의 정통입장과는 달리 믿음과 회개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사랑들이 일어났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신율법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등장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았는데, 그들은 개혁주의(개혁파)의 ‘오직 은혜’ 교리가 도덕적 해이나 율법 무용론으로 흐를 것을 우려하면서, 성도의 거룩한 삶과 순종을 강조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에 영국의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를 중심으로 한 일군의 신학자들은 복음을 “새로운 은혜의 법”으로 정의했다. 과거 행위 언약의 엄격한 법 대신, 그리스도께서 ‘믿음’과 ‘회개’라는 완화된 조건을 요구하는 새 법을 세우셨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이들은 ‘믿음’과 ‘회개’를 ‘구원의 도구”가 아닌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내세운 셈이었다. 이는 은혜를 강조하면서도, 인간의 의무를 구원론 안으로 다시 끌어들여 “신인협력적” (Synergystic) 성격을 띠게 된 배경이 되었다.

이에 대해 정통 개혁주의는 신율법주의가 말하는 ‘믿음’이 구원의 도구적 수단을 넘어,구원을 가능케 하는 공로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하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만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라는 점을 재차 확인하였다.

정리하면, 신율법주의자들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개혁주의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믿음을 단지 구원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만 이해하였던 것이다. 17세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받는 스위스의 신학자 프란시스 투레틴 (Francis Turretin)은 이점과 관련하여, 구원의 “원인”과 “수단”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믿음은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적 조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는 “도구적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구원의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한다”.(Francis Turretin, Institutes of Elenctic Theology, Vol. 2, P and R Publishing, p. 675)

이 점과 관련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1장 1항 역시, “하나님께서는 그들 안에 있는 어떤 것이나 그들이 행한 어떤 것을 인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그들을 의롭다고 하신다. 또한 믿음 그 자체나 믿는 행위, 혹은 다른 어떤 복음적 순종을 그들의 의로 돌리지 않으시고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그들에게 전가하신다.” 고 밝히고 있다.

3.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교리는 타교파에 속한 이들의 구원가능성에 개방적이다.
구원에 있어서 개혁파의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교리는 우리 교단만이 구원이 있다는 배타성을 극복하게 한다. 왜냐하면 구원은 인간의 정확한 신학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기적 작정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챨스 핫지(Charles Hodge)는 타 교파 성도들의 구원 가능성에 대해 매우 포용적인 입장을 견지했는데, 그는 “우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공식 교리가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성령의 사역은 인간이 세운 교파의 경계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Vol. 3, Scribners, p. 542)라고 밝히고 있다.

존 칼빈 (John Calvin) 역시 가톨릭교회 내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남아 있음을 인정했다. 그에 따르면, “로마 교황청 내에 교회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도록 그 비참한 파괴 가운데서도 자신의 남은 자들을 신비롭게 보존하신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4.2.11) 이처럼 존 칼빈을 비롯한 정통 개혁파 신학자들은 타교파에 속한 사람들의 구원 가능성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교리를 따라 개방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신인협력설은 구원의 상실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하나님의 단독 사역으로서의 성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영원히 보존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7장 1항은 이점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용납하시고 그의 성령으로 유효하게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에서 완전히 또는 최종적으로 타락할 수 없으며,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여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다.”(WCF 17. 1)

글을 마치면서
신학은 단순한 지식이나 이론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찬양(Doxology)이어야 하듯이, 개혁파(개혁주의) 신학의 목적은 타교파에 대한 지식적 우월감이 아니라 은혜에 대한 찬양이다. 우리가 타 교파 성도들의 구원가능성에 개방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신학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오류보다 크며,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의 신학적 이해보다 훨씬 깊고 넓다. 특히나 네피림을 치유하며 237, 5천 종족 복음화를 향해 진행되는 다락방 전도운동은 복음의 깊이와 높이와 함께, 본질을 잃지 않는 한에서, 모든 것을 살릴 만큼 큰 ‘너비’를 가진 포용성을 지닌 신학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오 수 영(PhD. RTS 조직신학)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