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현장] 84년 감사로 누린 선교 여정 – 필리핀 스텔라 선교사

[선교현장] 84년 감사로 누린 선교 여정 – 필리핀 스텔라 선교사

84년 감사로 누린 선교 여정 – 필리핀 스텔라 선교사


필리핀 제자들이 전도운동의 바통 이어가기를

스텔라 선교사의 이름은 스텔라 화하르도(Stella Fajardo), 한국 이름은 한태희다. 그녀의 이름에 다민족 선교가 담겨 있다. 43년생으로 올해로 84세인 그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 여정 속에 여러 굴곡을 경험했다. 굴곡진 그녀의 인생을 하나님은 전도운동에 사용하셨다. 그녀는 “제 기도제목은, 저는 이제 죽을 거니까 제가 뭐를 하겠다 이건 아닌 것 같아요. 필리핀 사람들을 세워놨으니까 그 사람들이 이어서 전도운동 하는 것이 그게 제 기도제목이에요.”라고 전했다. 인터뷰 내내 소녀처럼 너무 재미있었다고 전한 그녀의 84년 여정을 함께해 보겠다. 

기독교 집안 

스텔라 선교사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녀는 “6살부터 영락교회에 다녔어요. 근데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가 맨 처음 배운 찬송가가 뭔가 하면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그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찬송가 있잖아요?(웃음) 그거를 처음 배웠어요.”라고 기억을 전했다. 어릴 때부터 다닌 교회에서 복음은 듣지 못했다. 그녀는 “아주 엉망으로 살았지요. 고려대에 들어가고, 미국에 유학 가고, 프랑스도 유학 가고 그러니까 제가 잘난 줄 알고 제 마음대로 살았어요.”라고 전했다.  

스텔라 선교사 가족들(왼쪽) / 고려대 62학번 학우들과 함께(오른쪽)

언어를 잘하는 아이

하나님은 스텔라 선교사를 언어 공부에 매진하게 하셨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 때 영어를 29점 받았어요. 60점 해야 패스인데 패스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영어 학원을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쭉 다니고, 그다음에 불어 공부도 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외국어 대학에서 하는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미국 선교사님이 우리 집에 왔어요. 영어로 말하는데 매일 같이 영어를 공부했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는 거예요. ‘내가 영어를 제대로 안 배웠구나!’ 그래서 조금 더 신경 써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고려대 62학번

스텔라 선교사는 62학번으로 고려대에 들어갔다. 그녀는 “우리가 국가고시 1기였어요. 고려대 들어갔는데 고대 전체에 여자가 16명 밖에 없는 거예요. 저는 서울에서 자랐는데 고대는 지방 출신이 많아서 말도 다 사투리고..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 62학번 친구들을 지금도 만나고 있어요. 나중에 보니까 우리 반이 사람들이 참 다 좋은 사람들인 거예요. 지금은 친구들이 많이 죽었어요. 매년 모임을 하는데 갈 때마다 누구 하나가 죽어있어요.”라고 전했다. 고려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스텔라 선교사는 미국으로 유학 가 패션 디자인을 배웠다. 

69년 필리핀으로, 내 생각대로 되는게 없더라

미국 유학 중에 필리핀 남자와 결혼했다. 그녀는 “제가 한 4~5년을 쫓아다녔어요. 그래서 결혼을 해서 필리핀에 왔어요. 저는 원래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서 프랑스 가서도 살았었는데 안되더라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계획한 것, 제가 드림(Dream)하는 것은 절대 안 되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은 지금부터 그런 거 아주 포기해 버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얼른 ‘하나님이 알아서 하세요.’를 찾는 게 제일 빠른 길이에요. 안 그럼 저처럼 고생 고생해요. 예수님도 창세기 3장부터 예언이 되었잖아요? 뼈 하나 안 부러지는 것도 예언됐고, 다 그대로 됐어요. 하나님 말씀은 성취가 되는데 제 말은 성취가 안 돼요.”라고 웃으며 전했다. 

27년 가톨릭으로 살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다

가톨릭 신자였던 남편을 따라 스텔라 선교사도 27년을 가톨릭으로 지냈다. 그녀는 “저는 가톨릭이라서 예수님을 믿었다고 생각했어요. 1997년인가? 식품가게에 뭘 사러 갔는데 어떤 사람이 자꾸 내 번호를 달래요. 저는 ‘뭐 팔아먹으려고 그러나?’ 했는데 그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이틀간 안 가고 울고 야단이에요.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탄 얘기를 하고 요한복음 8장 44절을 말하는 거예요. 별난 여자가 다 있네 그랬어요. 그런데 계속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말씀을 얘기하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다락방 전도운동 목회자와 만남

그 별난 사람을 통해서 다락방 전도운동을 하는 목회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윤재석 목사님이 3년간 우리 집에 와서 다락방을 해줬어요. 매주 수요일마다 우리 집에 와서 저와 성경 공부를 하는 거예요. 저는 사실 개신교에 대해서 실망이 많았어요. 목회자들끼리 맨날 싸우는 거예요. 천주교는 그런게 없거든요. 윤재석 목사님도 갈등이 있어서 신학교를 새로 차리는데 새로운 신학교에 통역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윤 목사님이 저에게 통역을 부탁하려고 3년을 우리 집에 온 거예요.”라고 전했다. 스텔라 선교사는 당시 필리핀에서 동시통역사로 일하고 있었다. “국제회의 동시통역을 하고 있었어요. 마닐라에서 하는 국제회의나 법정에서 통역하고 대사관에서 와달라고 하면 가서 통역하고 그랬어요.”라고 전했다.  

7년간 신학교 통역 속 복음 각인

스텔라 선교사는 신학교 통역을 하기로 수락했다. 그녀는 영어와 따갈로그어 통역이 가능했다. “강사가 한국어로 말하면 제가 혼자 영어, 따갈로그어로 통역했어요. 9시부터 4시까지 혼자 통역해서 나중에는 입술이 다 찢어졌어요. 강사들은 계속 바뀌지만 통역은 혼자였거든요.”라고 전했다. 그때부터 7년간 통역을 지속했다. 그녀는 “통역 하면서 신학교 메시지를 들어보니까 가톨릭하고 다른데 너무 괜찮은 거 있죠. 그래서 돈 안 받을 테니까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학교에서 공부한 거예요. 하루에 7-8시간씩 똑같은 메시지를 계속 통역해 봐요. 말씀이 각인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전도해서 필리핀 학생들도 많이 학교에 데려다 놨어요. 그렇게 학부를 졸업했는데 너무 감사해서 막 울었어요. 하나님이 이런 나이에 이렇게 축복해 주신 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훈련받은 이사벨라 대학 교수들과 필리핀 목회자들(왼쪽) / 다락방 훈련받은 목회자 안수식(오른쪽)

숙제로 열린 이사벨라 대학 교수 사역

신학교 숙제를 하는 가운데 전도 현장도 열렸다. 그녀는 “연구원 2학년이 되니까 학교에서 밤낮 전도하라고 그래요. 제가 어디로 전도를 가는가 하면 마닐라에서 10시간 버스 타고 가는 이사벨라 지역에 주립 대학이 있어요. 거기 총장부터 찾아가서 만나고 그 교수들을 전도해서 연구원생으로 등록시켰어요. 그런데 하루는 어떤 목사님이 자기가 그 대학 사역을 하겠다고 저보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가 볼 때 거기는 필리핀 목사가 사역을 해야 되는 곳인데.. 사실 한국 선교사가 하는 교회에 필리핀 사람은 안 가요. 한국 교회는 필리핀의 멋있는 애들이 와도 깔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어쨌든 그분이 한다고 해서 그냥 양보하고 나왔어요. 지금은 윤재석 목사님이 대학 사역을 지속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죽을 때까지 RU 훈련

이사벨라 지역을 양보하고 나왔는데 새로운 전도문이 열렸다. 스텔라 선교사는 “거기서 나와서 순복음교회를 4년간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연결된 제자가 너무 많아요. 지금 미국 RU(Remnant University 렘넌트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둘이나 있어요. 다 전도를 잘하는 제자들이에요. 사실 이사벨라 지역에서 나올 때는 마음이 좀 아팠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아프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그래요.”라고 전했다. 스텔라 선교사는 자신도 RU 수업을 들으면서, 현장에서 찾은 제자를 RU에서 훈련받게 돕고 있다. 그녀는 “RU를 코비드(COVID)에 시작했어요. 공부는 사실 잘 못해요. 그냥 듣기만 하는 거죠. 리포트를 영어로 써야 하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해요? 빵점을 많이 받았지만 괜찮아요. 저는 그냥 죽을 때까지 공부할 거예요. 너무 재미있어요. 강사 목사님들이 다 저보다 젊잖아요. 제 나이가 지금 다락방 선교사 중에 제일 많을 거예요. 이 나이에 공부하게 하시니 너무 감사하죠.”라고 전했다. 

이안 커비 렘넌트 / RU 선교학 학사과정

이안 커비 렘넌트는 순복음교회 현장에서 연결된 제자로 지금 RU에서 선교학 학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저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갔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세상의 즐거움을 따라 살았고, 마음 깊은 곳에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고, 삶의 방향을 바꾸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담임목사님의 초청으로 스텔라 목사님이 오셔서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조금씩 열어 주셨습니다. 말씀을 계속 들을수록 복음에 대한 갈망이 생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저를 변화시키고 계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즐거움을 주던 세상의 것들은 점점 힘을 잃었고, 말씀 안에서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저를 계속 변화시키시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양보하고 군사역으로 

하나님은 순복음교회 현장도 양보하게 하셨다. 어떤 한국인 목회자가 자기가 그 교회를 후원하고 싶다며 스텔라 선교사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스텔라 선교사는 “그래서 ‘좋아’ 그러고 나오는데 3년 전에 김언용 목사님이 필리핀 군사역을 담당하라고 하셨던 것이 생각났어요. 그때는 제가 80이었는데 ‘내가 늙었는데 뭘 하나?’ 그랬거든요. 그게 생각나서 막상 군사역을 하려니까.. 아는 군인도 한 명도 없고 막막했어요. ‘어디 가서 군인을 찾나?’ 하면서 국방부에 들어갔어요. 제 국적은 한국인인데 운전면허증하고 다른 거는 필리핀 국적이거든요. 국방부는 외국인은 못 들어가는데 저는 프리패스인 거예요. 국방부에 들어가 보니 ‘인터페이스’라는 공간이 있어요. 군인들이 종교활동하는 공간인데 무슬림도 모이고 가톨릭도 모이고 하는데 총책임자가 가톨릭이에요. 그 사람을 만나 제안을 했어요. ‘우리 학교가 미국에 있는데 내가 군목들을 장학금을 줘서 보내고 싶다. 좋은 군목을 소개시켜 달라.’ 그렇게 말했더니 자기가 가고 싶대요. 그래서 ‘당신 개신교냐?’ 그러니까 가톨릭이래요. 그러면 안 된다고 거절하고 다른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했어요. 소개해 준 사람이 군목 총책임자인 대령인데, 만나서 얘기해 보니까 먹통인 거예요. 메시지가 안 통하더라고요.”라고 당시 기억을 전했다.  

(국방부교회 앞에서 군사역 제자들과 함께)

복음 없는 국방부 교회에서 버티기

국방부에 들어가면서 국방부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스텔라 선교사는 “국방부 교회는 내가 못 살겠는 거 있죠. 메시지가 없어요. 3년을 다녀도 ‘예수가 그리스도’를 못 들어봤어요. 일요일마다 교회 다녀와서 류광수 목사님 메시지 듣고 이렇게 살았어요. 미치겠더라고요. 일요일이면 지겨워 죽겠어요. 근데 뒤에서 하나님이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너 보내는데 내가 알아서 하지. 너가 왜 야단이야?’ 그리고 갈라디아서 2장 20장 말씀이 생각나면서 ‘너가 죽었다며 근데 왜 불평이 많아? 죽은 게 왜 불평이야? 너 아직도 안 죽었어.’라고 말씀하시는 거 같아요. 국방부교회 목사님이 아까 말한 필리핀 군목 총책임자 대령인데, 한 1년쯤 있더니 딴 데로 가버리더라고요. 그리고 말릭댐(Malicdem)이라는 육군 대위가 말씀을 전하는데 약간 (복음이) 통하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또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는데 필리핀 감리교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 이사장 루디 환(Rudy Huan) 목사를 만났어요. 이 사람이 감리교 세계 군선교 조직 회장이예요. 지난번에 클락에서 집회할 때 류광수 목사님과도 만났어요. 루디 목사가 나를 한 달에 한 번 군목들 모이는 회의를 초대를 해요. 거기 가서 말씀을 전했어요.”라고 전했다. 그곳에서 만난 군목들을 훈련시키고, 말씀이 통하는 사람은 RU에 등록하고 한국 훈련에 초청하고 있다. 

(왼쪽부터: 라리 알바래즈 중령, 감리교 신학교 이사장 루디 환 목사, 호셀리토 말릭댐 대위)

프로이(해병대 소령) 장로 

이곳에서 훈련받은 프로이 소령은 한국의 국방어학원에 입학해 2년간 훈련받고 지난해 세계군선교대회에서 장로로 임직 받았다. 그는 지난해 군선교대회에서 “저는 40여 년을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제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았는데 성경을 읽고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리며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더 친근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라는 미션을 잡았습니다. 사실 24 기도를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누리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의 성전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언약대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만으로 그냥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제 기도제목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필리핀 군 현장과 5000 종족 현장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라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매주 스텔라 선교사 집에서 군사역자와 지역교회 목회자들이 모여서 훈련받는다.)

필리핀 작은교회 목회자와 군목 훈련

매주 목요일에는 지역의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스텔라 선교사의 집으로 모인다. 스텔라 선교사는 “필리핀 목사님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매주 목요일마다 우리 집에 와요. 제가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강의를 해요. 그곳에 군사역하는 사람들도 모여요. 강의를 잘 듣는 사람만 훈련받게 도와요. 국방부에서 훈련받는 멤버들은 다 군목 트레이닝 멤버들이에요. 현장에서 얼마나 전도를 잘하는지 몰라요. 그런 사람들만 모여요.”라고 전했다. 이렇게 훈련받은 제자들 중에 호셀리토 말릭댐(Joselito Malicdem) 대위와 폴 디뇨(Paul Dino) 중령이 지난 4월에 열린 세계선교대회 참석했다. “말릭댐 중령은 인터페이스 오피스에서 관리자예요. 국방부에 처음 오는 사람은 이 사람이 다 만나고 지난해 12월에 조직이 재편성되면서 폴 디뇨가 책임자가 되었어요. 폴 디뇨는 신학 박사예요. 말씀을 그렇게 잘 듣고 사람이 아주 겸손해요. 폴 디뇨 밑에는 라리 알바레스라는 소령이 있어요. 말릭댐, 폴 디뇨, 알바레스 또, 해군 중령 한 사람 이렇게 지금 5-6명이 훈련 받는데 모두 군목 티칭(teaching) 교사예요. 그런 사람만 모여서 훈련받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현장에서 가르쳐야지 제가 가서 가르칠 수 없어요. 기도 제목은 이렇게 훈련받은 군목들이 메시지를 더 들어서 스스로 전도운동을 하는 거예요. 필리핀 현장의 전도운동은 그 사람들이 해야 되는 거니까 저는 뒤에서 이렇게 훈련 지원해주고 밥 사주고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군부대 집회 후 세계군선교연합회장 김기호 장로와 제자들)

세계군선교연합회와 함께 필리핀 군부대 집회

스텔라 선교사는 세계군선교연합회와 함께 사역하며 매년 필리핀 군부대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그녀는 “목요일마다 김언용 목사님하고 줌으로 사역을 해요. 거기서 통역하는 친구도 RU에 다니고 있어요. 그렇게 RU에 다니는 군 사역자들이 지금 4명이에요. 그리고 필리핀 군부대에서 우리가 3년째 집회를 했어요.”라고 전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집회가 열려 세계군선교연합회장 김기호 장로가 참석했다. 김 장로는 “집회 날 아침에 무슨 비상이 떠서 5백 명 넘게 초청했는데 2백 명 정도의 군인들이 참석했습니다. 류광수 목사님께서 ‘디아스포라시대의 필리핀’이라는 제목으로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셔서 같이 말씀 듣고, 스텔라 선교사님이 구원의 길 메시지, 제가 세계군선교연합회 조직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복음운동할 제자 한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을 세우는 일에 주력 하려고 합니다.”라고 전했다. 

후대 전도운동 위해 교회부지 준비

84세 스텔라 목사는 여전히 꿈꾸고 있다. 그녀는 “아들에게 나 교회 짓고 싶으니까 땅을 달라고 하니까 아들이 생일 선물로 땅을 줬어요. 216 스퀘어미터(약 65평)를 받았는데 필리핀에 잘 사람들이 사는 좋은 동네의 땅이에요. 내가 죽더라도 교회 부지로만 쓰도록 해놨어요. 그런데 교회 건물을 지어줄 사람이 없어요. 제가 죽기 전에 교회가 세워지면은 RU에서 훈련받는 학생들이 사역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계획했던 건 전부 안 되었으니까 하나님이 그 땅을 쓰셔서 하나님이 지어주실 거라고 믿어요. 제 기도가 그거예요. 지금 필리핀 사람들을 이렇게 세워놨으니까 그 사람들이 전도운동 할 수 있게.. 저는 이제 죽을 거니까, 제가 뭐 어쩌고 하는 건 아닌 거 같고, 지금 그렇게 키워낸 RU 학생들이 이어서 전도운동이 계속되는 것이 제 기도제목이에요.”라고 전했다.

가족복음화의 한

인터뷰 마지막에 스텔라 선교사는 가족복음화의 한을 눈물로 전했다. 전도운동이 일어나도 가족들이 돌아오지 않아 스텔라 선교사를 눈물로 기도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영접하시고 돌아가셨는데 우리 신랑도 6개월 전에 영접하고 죽었어요. 또 우리 딸이 8년 전에 죽었어요. 그 아이도 4개월 전에 영접하고 죽었어요. 그래서 알아요. 하나님이 남아 있는 우리 집안 다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 남동생도 복음 얘기만 하면은 ‘누나 오지 마!’ 그랬는데, 죽기 이틀 전에 저를 불러가지고, 손이 아플 때까지 제가 기도해 줬어요. 찬양해달라고 해서 ‘예수는 그리스도’ 그거를 2시간도 넘게 불러줬어요. 죽을 때 영접하고 갔어요. 남은 가족들도 구원해 주실 거라 믿어요.”라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스텔라 선교사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가 이 삶을 살 수 있게 하여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다락방 전도운동에 와서 공부하고 목사님들하고 만나고 해서 제 인생이 진짜 마귀 자녀에서 하나님 자녀가 되고, 지금은 또 하나님 자녀에서 목사까지 만들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너무 감사해서 뭐라고 얘기할 수 없지만, 지금 우리 집에는 믿는 사람이 저 하나밖에 없는데 우리 자손들도 하나님이 다 인도해 주신다고 믿고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너의 집이 구원을 받는다고 하신 약속, 저는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대로 시켜주시는대로 살고 죽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성취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인터뷰 후 추가 질문이 있어 연락을 했더니 그날도 스텔라 선교사는 RU 숙제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올여름 WRC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말씀과 훈련 속에 있는 삶. 84세,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은 역전의 선교사가 보여준 오늘의 모습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 흐름 속으로 이끄시기를 기도해 본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