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로 이해하는 성경] ‘돈’과 ‘맘몬’의 관계
헬라어 μαμωνα̩ (mamōna 마모나), 히브리어 מַמוֹן(mamôn 마몬) 묵상
인간은 과연 얼마만큼의 돈을 가져야 만족할 수 있을까? 인간의 욕심은 과연 어디에서 멈출 수 있을까?
2025년 5월경 정부는 임대주택 7,000채를 보유한 한 임대인이 비싼 전세를 낀 채 매입한 주택 가격이 급락하면서 입주자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발표한 적이 있다. 또, 10대 기업에 속했던 한 대기업은 하도급 업체에 지불해야 할 대금이 23년째 밀려 있는 상태라는 보도가 있었는가 하면, 다른 대기업 총수는 살던 집의 내부수리에만 72억을 사용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관해서 만큼은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의미 없는 학설일 뿐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기사를 읽으면서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현장이 이렇다 보니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돈이 삶의 최우선 가치가 되어버린 시대가 되었다.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상대적 박탈감과 비교의식으로 분노와 적대감마저 증폭되는 것 같다.
인간의 탐욕이 이렇듯 끝이 없다 보니 오죽했으면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과 탐욕은 메울 수 없다”는 말이 생겼을까 싶다. 어쩌면 돈에 대해 품고 있는 무의식적인 생각과 신념이 한 사람의 인생 방향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돈을 천하게 여기고, 누군가는 돈을 사랑의 증표로 여기고, 누군가는 돈이 자신을 보호하고 살리는 힘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물질의 풍요와 영적인 행복은 서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질이 삶의 일부를 편리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절대로 인간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에 집착한 나머지 하늘 보좌의 능력보다 돈을 의지하고 돈을 따라가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재물’로 번역된 μαμωνα̩ (mamōna 마모나)는 ‘재물, 부, 재산’을 뜻하는 μαμωνας (mamōnas 마모나스)의 여격 명사이며, 이 단어는 헬라어가 아닌 아람어의 음역이다. 실제로 ‘재산, 재물, 신뢰할 수 있는 것,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 아람어 מַמוֹן (mamôn 마몬)은 “믿는다, 맡긴다, 신뢰한다”라는 뜻으로 번역되는 אָמַן (’āman 아만)에서 파생되었다. 이러한 אָמַן (’āman 아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한다는 의미로 אָמֵן (’āmen 아멘)할 때 쓰이는 ‘아멘’을 파생시키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신뢰하는가’이다. 하나님 말씀에 ‘아멘’할 것이냐, 돈 앞에서 ‘아멘’할 것이냐다. 돈을 믿을 것인가,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양자택일 뿐인데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섬기려하는 성도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מַמוֹן (mamôn 마몬)이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재물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우상의 이름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중세 시대에는 마몬을 탐욕과 물질주의를 상징하는 악마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단테의 『신곡 』이나 존 밀턴의 『실낙원』 같은 문학작품에서는 탐욕과 물질주의를 의인화시켜 표현하기도 했다.
복음으로 답을 내야 하고 전 세계에 1천 망대를 세워야 되는 모든 중직자와 산업인 그리고 렘넌트들은, 누가 뭐래도 반드시 3경제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돈을 따라다니면서 돈을 숭배할 만큼 우상화해서는 안 됨을 명심해야 한다.
실제로 신약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은, 돈’으로 번역된 단어는 αργυρος (argϋros 아르귀로스)가 있다. 이것은 빛난다는 의미의 αργος (argos 아르고스)에서 파생되었으며 히브리어 כֶּסָף (keceph 케쎄프)의 번역어이다. 히브리어에서 ‘은, 돈’으로 번역된 כֶּסָף (keceph 케쎄프)는 ‘바라다, 소원하다, 원하다, 열망하다’의 뜻으로 쓰인 동사 כָּסַףּ (kacaph 카싸프)에서 온 명사로서 만약 수동태로 사용될 때는 “수치를 당하다, 창피를 당하다(습2:1)”의 뜻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물론이고 특히 주의 종들은 돈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님 앞에서 투명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수치와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 여부는 물질의 풍요와 결핍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자녀 된 신분을 가졌다해도 물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다면 후대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연을 노래하고 꽃을 노래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시대가 아니던가? 사람 앞에, 권력 앞에 그리고 돈 앞에 무릎 꿇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는 시대가 아니던가? 모든 족속과 땅끝까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할 전도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기도할 시간인 것 같다.
서말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