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영산업인] 렘넌트 정체성 가지고 산업 현장의 망대로
황영기 장로 / 뉴져지원니스교회
안녕하세요? 황영기 장로입니다. 저는 뉴저지 원니스교회 장로로 섬기면서, 글로벌 컨설팅 회사 파트너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6학년 때 어머니와 같이 미국 워싱턴으로 왔어요. 어머니(황 장로의 어머니는 임마누엘 서울교회 강만선 장로, 아버지는 황환승 장로다.)가 어느 날 테이프를 몇 개를 받아 가지고 그거를 계속 들으시는 거예요. 테이프 출처를 수소문해서 워싱턴 지역 전도학교로 연결이 되었어요. 그렇게 저도 미국에서 다락방전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미국 교회 현장을 보다
전도학교를 통해 다락방 교회로 연결이 됐는데, 당시 워싱턴에 계시던 김현덕 목사님의 한우리 교회였어요. 한우리 교회가 나중에 한빛선교교회와 합쳐져서 본당에만 700여 명 정도 들어가는 큰 교회당으로 인도 받게 되었죠. 97~98년에 그 교회에서 집회를 많이 했습니다. 99년쯤 교회가 분리되었고, 따로 워싱턴임마누엘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 한동안 목회자가 세워지지 않아서 류광수 목사님의 영상 메시지만 보던 적도 있습니다. 나중에 서대석 목사님이 파송되셨어요.
‘저는 영접 안 한 거 같은데요!’
당시 저는 열심히 훈련에 따라다녔는데요, 6학년짜리 어린 아이가 전도학교에 가죠, 집회도 따라가죠, 하니까 어른들은 ‘신기하다.’ 하시면서 머리 쓰다듬어 주시고 그랬지, 누구도 저에게 영접하자는 말씀을 안 해 주셨어요. 얘는 그냥 당연히 했겠지 이런 느낌이죠. 당시 한국에서 팀사역을 많이 오셨는데, 제가 한 분을 붙잡고 ‘영접 어떻게 하는 건가요? 저는 안 한 것 같은데요?’라고 여쭤봤어요. 그렇게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정식으로 영접을 했습니다.
교회현장에서 찾은 나의 것
저는 똑똑하지가 못해요. 그래서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이거에요.’, 아니면 ‘난 이걸 하고 싶다.’ 그런 게 없었어요. 뭘 원하는지 모르겠고, 하나님이 뭘 예비해 놓으셨는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기도만 했어요. 그런데 돌아보니 교회에서 한 일이.. 예를 들면 통번역 심부름하고, 어른들 돕고 이랬던 일들이 다 발판이 돼서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사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면 준비를 시키신 시간이었어요.
회사 결정을 앞두고 기도
저는 지금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건 따로 있었는데, 사실 그곳에 지원한 것도 합격하고, 지금 회사도 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고 싶었던 곳은 연봉도 많았고, 지금 회사는 초봉이 많지 않았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니까 기도해야 되잖아요. 마지막 결정을 앞두고 주일 메시지를 듣는데 ‘하나님 저는 진짜 모르겠습니다. 이미 알려주셨는데 제가 모를 수도 있으니까 아주 그냥 명확하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모자라기 때문에 명확하게 알려주셔야 됩니다.’ 그때 이런 기도를 한 것 같아요.
말씀 따라 결정
그런데 메시지에서 ‘렘넌트들은 사회 나갈 때, 어디서 좀 돈 더 준다고 여기로 가고, 저기로 가고 하지 말고, 기초를 잘 쌓을 수 있는 데로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있는 직장 Job Description(업무 내용)을 다시 보니까 ‘이거 늘 학교에서 하던 건데? 이거 하면 기초는 정말 잘 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곳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지금까지 쭉 21년 동안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 확인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정확한 인도였어요. 원래 가고 싶었었던 곳이 금융 회사인데 2008년도 금융위기 때 없어졌거든요. ‘저는 당장 내일 일도 잘 모르는데 3~4년 후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인도를 하셨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를 확인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근데 그런 경험들을 한 번, 두 번 하고 나니까 그다음부터는 이런저런 얘기가 있어도 잘 안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교회가 됐건, 회사가 됐건, (지역) 이사가 됐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무조건 말씀 속에서 답을 찾는 습관이 생기게 된 것 같습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파트너
저는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 전공업무는 국제 조세 內 이전가격 (Transfer Pricing) 이라는 전문분야 입니다. 글로벌 운영모델 점검 및 구조조정, 이전가격 정책 수립, 국제거래에 대한 문서화 업무, 국제조세 분쟁 대응 등 업무에 자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변호사와 회계사, 경제학 박사들과 팀을 이루어 일하는데, 업무 성격상 여러국가에 위치한 팀들과 함께 협업을 합니다. 그 외에도 다른 여러 컨설팅 분야에 제 클라이언트(고객사)가 필요로 하면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 21년 차가 돼서, 이제 22년 차입니다.
‘렘넌트’ 정체성
하나님의 인도 받는 비결이라고 하면, 저에게는 교회인 것 같아요. 교회고, 복음이고, 기도의 힘이고, 나의 정체성이고 그런 것 같습니다. 나중에 윗분들이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처음에 직장에 왔을 때 약간 분위기가 ‘나 Sam Hwang(샘 황: 황영기 장로의 영어 이름) 왔어!’ 약간 이런 느낌이 있었대요. 저는 ‘렘넌트’로서 회사에 간다는 그런 느낌으로 갔는데 윗분들은 그런 느낌으로 받아들이신 거죠. 저는 늘 렘넌트로서의 정체성을 크게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21년 동안 당연히 어려운 일, 어려운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말씀, 기도, 교회 시스템, 훈련 시스템 안에서 계속 인도해 주신 것 같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분이 든든한 배경으로
회사에 무섭고 많이 혼내시는 그런 분들이 계십니다. 제 윗분들 중에도 당연히 그런 분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힘들게 하던 분을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지금은 저의 가장 큰 배경, 스폰서가 되어 주시고 계십니다. ‘언약의 여정’ 공연도 관람하러 오시고, 어머니도 함께 만나실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함께 일하기 힘든 분이거든요. 지금도 그분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너는 어떻게 잘 지내?’ 묻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제가 기도하던 부분에 응답해 주시고 힘들 때마다 말씀으로 답을 주시고 그렇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21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 중직자로 누리는 언약
워싱턴임마누엘교회를 제가 떠나리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었어요. 회사에서 뉴욕으로 오라고 몇 번을 불러도 안 왔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 어떤 단계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지역을 한번 갔다 와야해서 뉴욕으로 2년만 온다고 생각하고 왔죠. 2년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회사 분위기가 ‘너 진짜 가려고 했어?’ 이런 느낌이었어요. 당시 담임 목사님께 상의드리고 기도하면서 뉴저지 원니스교회에 정착을 하게 됐는데 벌써 9년이나 됐네요. 뉴저지 원니스교회에 와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또 특별합니다. 제가 안수 집사로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요, 원니스교회 중직자분들은 처음에부터 지금까지도 늘 성전 건축 얘기, RUTC 얘기, 그런 포럼을 늘상 하세요. 이분들과 함께 성전 건축 응답도 받고, RUTC 축복도 누리고, 지역에서 렘넌트 사역도 함께하면서 참 너무 감사한 거죠.
직장 현장에 망대로
저는 컨설턴트라 클라이언트를 많이 방문 합니다. 사실 저희 회사 분들보다 클라이언트 CFO(Chief Financial Officer: 기업의 재무, 자금, 회계 및 투자 전략을 총괄하는 최고재무책임자) 등 재무 및 세무 담당자분들과 훨씬 더 친해요. 이런 저런 말씀을 듣다 보면 누구도 삶이 편하신 분들이 없으세요. 또, 저를 찾으실 때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찾으시는 거라, 대부분 스트레스가 너무 많으시고, 가족, 자녀 문제 등 많은 문제를 가지고 계십니다. 근데 그분들과 편하게 복음을 나눌 상황은 안되거든요. 최근에 제가 붙잡은 언약이 망대 언약인데요, ‘그렇지.. 내가 거기 갈 때, 하나님 자녀로서 빛을 발하면 되는 건데, 너무 기계적으로 전하려고만 했구나! 전도는 영적인 건데, 내가 가서 빛을 비추면 흑암이 무너지고 그분들의 시간표에 따라 하나님이 하시는구나!’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요즘에는 클라이언트들에게 갈 때, 저희 회사 들어갈 때, 미팅할 때, 망대 언약을 붙잡고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마음도 너무 편하고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전문성이 플랫폼으로
제가 한 직장에서 20년을 넘게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전문성을 갖게 되고, 이제는 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연락이 옵니다. ‘망대로 빛을 계속 비추고 있으면 사람들이 온다는 플랫폼이 그런 의미구나!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플랫폼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이제 일어나고 있는 영산업인들에게 언약의 바톤을 잘 전달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전도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영산업인들이 또 자기 현장에서 플랫폼이 되는 그런 제자 사역을 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사실 집회 갈 때마다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를 하는데 가보면 너무 귀한 영산업인들이 많아요. ‘누구네 집 자식이냐? 어떻게 이런 렘넌트들이 일어나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고, 그래서 참 감사합니다.
다민족 목회자 세우는 언약
끝으로 제가 미국에 있다 보니까 현지 문화를 이해하면서 현지어로 사역할 수 있는 사역자, 목회자가 너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RTS와 RU에 좀 헌신하고 후원을 할 수 있는 그런 그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OMC 통해서도 조금씩 마음을 담고 있는데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에는 다른 문화와 언어권에서 다락방 신학을 하거나, 선교를 준비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지 않더라고요. 미래를 생각하면 제일 중요한 것이 목회자.. 진짜 목회자가 너무 중요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