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무속인]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으로 이끄신 언약의 여정
“힘들 때마다 찬송가 445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그거를 늘 불렀어요. 그러면 아들이 ‘엄마가 작사 작곡 다 해라.’ 그래요. (제가) 발음도 안 되고 틀리게 부르는데 지금도 그거를 참 즐겨 불러요.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참 빛이 되어 주시고…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이 없으면 갈 수 없잖아요. 나에게 은혜가 되는 거예요. 부르면서 눈물, 콧물 얼마나 흘렸는지 몰라요.”라고 고백하는 최양선 집사의 인생에는 정말로 태산과 험곡이 많았다. 그런데 그 태산과 험곡 가운데 길을 잃지 않도록 밝은 빛으로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여정이 있었다.


신앙생활과 함께 시작한 무속현장 캠프를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좌) 임마누엘교회 무속사역과 함께(우)
북한에서 온 부모님
최양선 집사의 부모는 이북 출신이다. “아버지는 함흥, 어머니는 원산 사람이고, 저는 거제도에서 태 어났어요. 그때(1950년대) 거제도에 실향민들이 많 았잖아요. 부모님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셨는데 저는 어렸을 때 교회를 다녔어요.”라고 최 집사는 회상했다. 6.25 전쟁 후 온 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최 집사의 집안도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졸업 후 혼자 부산으로 와 독립했다. 최 집사는 “그 냥 여러 곳에서 일하면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을 쳤 어요. 그러면서도 교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말씀이 이해가 안 갔어요.”라고 기억을 전했다. 부산에서 결혼도 했다. “시집 쪽 집안에 우환이 많았어요. 남 편이 17대 종손인데 1년에 열두 번은 제사를 지냈 어요. 그런데 저는 제사는 신경도 안 썼어요. 명절 에 올라가 (제사) 설거지를 하면 그릇이며 향로를 깨 먹어서 욕도 많이 얻어먹었는데… 하나님이 그 때도 (제사에 관여하지 않도록) 나를 지키셨구나.이제 깨달아지는 거예요. 그때는 (복음도) 몰랐잖 아요”라고 최 집사는 전했다.
끔찍한 사고
남편은 늘 술만 마시는 사람이라, 최 집사가 3명의 아이를 키우며 돈을 벌어야 했다. 바쁘게 살던 어느 날, 일하던 공장 기계에 최 집사의 손이 딸려 들어가는 사고가 났다. 1987년 서른을 좀 넘은 나이였다. 최 집사는 “뼈가 다 가루가 되고 남은 뼈가 보이는데, 너무 놀라서 아픈 줄도 몰랐어요. 공장에 1톤 트럭 있잖아요. 그걸 타고 병원에 갔는데 수술이 안 되는 거예요. 기술이 없어서. 몇 군데 (병원)을 돌아서 갔는데 (의사가) 손목까지 잘라야 된다는 거예요. ‘그나마 괜찮다.’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최 집사는 덤덤하게 전했다. “(수술하고) 그날 밤에 이제 붕대를 이렇게 (손에) 감았는데 잠은 안 오고 미치겠는 거예요. 하루는 여기서 죽겠다고 창문을 붙잡아 섰는데 옆에서 누가 붙잡아주더라고요.”라며 당시의 참담했던 마음을 전했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고 보니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최 집사는 “어려운데 집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이 안 됐어요. 남편은 나 몰라라 하고 술만 마시고, 애기들은 어리고.. 우리 막내가 그때 5, 6살 되었는데.. 해운대 바닷가에 가서 수평선만 바라보면 내가 죽어야지 그랬어요. 애기들 생각하면 죽지도 못하고..”라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내림굿을 받다
최 집사는 큰 어려움 속에 귀신에게 시달리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도 꿈을 꾸면 그대로 들어맞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거는 그렇게 신경을 안 썼어요. 그러다가 그 사고 후에 무언가 본격적으로 저를 힘들게 하는 거예요. 가끔 (제 목소리가) 아기 소리가 날 때도 있고… 병원에 갔는데, 보건 병원에서 (치료가) 안 되니까 ‘정신병원에 가야 된다.’ 이러더라고요. 그것도 충격이 됐어요.”라고 기억을 전했다. 당시 최 집사는 자신이 신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신을 받고 싶지 않아서 몇 년을 거부했다. 그러자 집안에 생각지 못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아, 내가 신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무당집 3곳에 찾아가 물었어요. 한결같이 신을 받으라는 거예요. 다대포에서 내림굿(신을 받는 굿)을 했는데 신을 받을 때 귀신에게 덮였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가 북한 피난 길에 잃었던 가족, 아팠던 가족의 모습을 한 귀신이 저에게 왔어요. 그게 1990년이에요.”라고 최 집사는 전했다.
법당을 차리지 않는 이유
최 집사는 신을 받은 후에도 법당을 차리지 않았다. “법당이 안되어졌어요. 따로 법당을 차리지 않고 그냥 다니면서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주고 했어요.”라고 전하며 기도도 되어지지 않았다고 최 집사는 덧붙였다. “절에 가서 기도를 하면 다른 사람 초는 다 (불꽃이) 타올라 가는데 내 초만 막 바람이 부는 거예요. 이게 뭐지? 그랬어요.”라고 전했다. 안 되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최 집사의 아들과 딸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부산의 임마누엘교회(당시 동삼제일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자녀들에게 최 집사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많은 성도들이 최 집사를 위해 이미 기도하고 있었다.


임마누엘교회 성도들과 함께. (좌) 전국여전도회 활동(우)
자녀들과 함께 임마누엘 교회로
하나님은 최 집사의 자녀를 먼저 교회로 불렀다. “딸내미하고 아들내미가 영도 임마누엘 교회에 간 거예요. 94년 교회가 12평인가, 13평인가 할 때였는데… 아이들이 일요일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김정구 목사님(당시 집사)을 만난 거예요. 목사님이 ‘우리 교회 가자.’하고 데리고 가셨대요.”라고 최 집사는 회상했다. 많은 성도들의 기도 속에 최 집사도 1996년부터 아이들을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최 집사는 “김정구 목사님이 집에 찾아와서 복음 메시지를 해주셨어요. 메시지를 듣는데 ‘아 왜 내가 이거를 몰랐지?’ 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이렇게 말씀을 전하시는데 ‘이게 뭐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동안 그런 거 전혀 모르고 그냥 교회를 다녔었잖아요.”라고 전했다.
말씀 속으로 들어오는 여정
눈물로 영접을 하기는 했지만 막상 말씀이 들리지 않았다. 최 집사는 “목사님 말씀이 내 귀에 안 들어와요. 교회 가면 찬양 부르고 좋은데 설교할 때는 코 골고 잤거든요. 그래서 교회 가서도 (예배당 안에 있지 못하고) 바깥에서 계속 돌았어요. 5~6년이 지나서야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어요.”라고 전했다. 하나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말씀을 듣고 분이 났다. 최 집사는 “목사님이 메시지에서 ‘병명이 없으면 정신병원에 간다.’ 그래요. 저 얘기 왜 나오지? 누가 목사님에게 고자질 한 것도 아닌데 (내 사정을) 어떻게 아셨지? 또 한번은 ‘개는 말 안 들으면 잡아 먹으면 되는데 사람은 먹을 수도 없고 (사람) 죽이면 감옥에 들어간다’는 그 말을 듣고 순간에 주저앉을 뻔했어요. 얼굴이 너무 화끈거리는 거예요. 그때 너무 미운 사람이 있었거든요. ‘하나님, 이 말씀을 지금 어떻게 (이해)합니까?’ 그랬는데, 그게 ‘복음을 알고 신발을 바로 신고 가라.’는 말로 들렸어요.”라고 전하며, “영적인 복음을 정확하게 알면 하나님이 어떤 시간표에 따라서 나를 움직이시는 거 같애요. 그때그때마다 딱 내가 들어야 될 말씀을 너무 정확하게 말해주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누가 목사님한테 (내 사정을) 다 고자질 한 것처럼 그랬어요.”라고 고백했다.
마태복음 16:16을 계속 고백
최 집사는 “여기(임마누엘교회)에서 창세기 3장 문제,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 형상, 창세기 3장 15절, 그다음에 출애굽기 3장 18절, 이런 말씀을 처음 들었는데 ‘이게 뭐야?’ 이러면서 들었어요. 그런데 모르겠던 말씀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어지는 거예요. 창세기 3장 15절은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출애굽기 3장 18절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 언약. ‘아, 이 안에 복음이 다 들어있구나!’ 하는 걸 깨닫는 순간마다 내 모습이 내가 변화된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다. 영접한 후 영적싸움이 시작되었다. 최 집사는 “힘들 때는 마태복음 16장 16절을 기도제목으로 잡았어요. (귀신이) 목을 조아도, 목을 조으니까 발음이 제대로 안 나와요. 그래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것을 길을 오고 가면서 계속 고백했어요. 그렇게 3, 4번 고백하니까 귀신이 떠나갔어요. 저는 복음을 전하게 되면 마태복음 16장 16절을 잡으라고 해요. 오늘 이날까지 진짜 제가 목숨 걸고 영적으로 싸워왔어요.”라고 고백했다.
무속 현장에서 확인한 복음의 힘
교회에 나오면서부터 바로 돌아온 무속인 제자들과 함께 현장 캠프를 했다. 최 집사는 “영도에서 구석구석이 안 댕기는 데가 없이 많이 들어갔었어요. 한번은 조사랑 목사님(돌아온 무속인 출신 목사)하고 몇몇이 모여가지고 김해 굿당에 갔어요. 거기서 굿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정확하게 이렇게 뒤져(샅샅이) 봤거든요. 무당이 멈추고 어떻게 왔냐고 묻더라고요. 한 두세 번 멈췄을 거예요. 그렇게 보고 있는데 보살 할매인가가 ‘십자가 건 사람이 왜 여기 있냐?’ 창문을 열고 막 소리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자기 눈에는 영적인 십자가가 보였겠죠. 이게 그리스도의 빛이구나! 이게 영적인 십자가구나! 자기 눈에는 십자가가 보이니까 그런 소리가 나오겠지.”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최 집사는 “이것을 알게 되어졌을 때 하나님께 완전 무릎을 꿇었어요. (그전까지는) 무릎을 안 꿇었었는데 그때 완전 무릎을 꿇었어요.”
가족 복음화
하나님은 최 집사의 가정을 복음화하셨다. 최 집사의 아들과 딸은 이미 앞서 임마누엘교회에서 중직자로 세워졌다. 최 집사는 “손녀 딸내미가 중학교 들어가서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를 받고 저 아버지(사위)도 교회에 나왔어요.”라고 전했다. 온 가족이 모두 교회에 나오는 상황은 아니지만 항상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 할 것은 이것밖에 없다 생각해요. 큰 손녀 딸내미하고 작은 손녀 딸내미 위해 기도하는 것 밖에 없어요. 제가 복음받고 나중에 알게 되어진 게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북한에서 장로님, 권사님이셨다고 하더라고요. 뒤늦게사 알고 보니 우리가 4대째예요. 우리 손녀 딸내미까지 신앙이 4대째인 거예요. 참 감사하죠.”라고 최 집사는 전하며 얼굴도 본 적 없는 조부모님부터 언약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다가왔음을 고백했다.

딸과 손녀와 함께 지난 2월 4일 열린 사랑부수련회에 참석했다.
다시 시작한 공부
최 집사는 복음안에 들어와서 못했던 공부를 다시 했다. “중학교부터 학교를 직접 다녔어요. 만학도식으로. 그런 학교가 있어요. 거기서 중학교, 고등학교 다 다니고. 대학교는 양정에 동의과학대 다녔어요. 산꼭대기에 있었는데 아침에 6시 반인가 일어나서 지하철 타고 다녔어요.” 2014년 시작한 대학은 9년간 다녔다. 어려우면 휴학하고 아프면 쉬고 하며 쉬엄쉬엄 공부를 마쳤다. 졸업은 영산대로 편입해서 마쳤는데 사회복지와 호텔경영 두 개 전공을 했다. 최 집사는 장애인 현장을 마음에 담고 있다. “저는 어렸을 때는 장애인이 무서워 도망 다녔지만 막상 내가 다치고 장애인이 되고 나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뭘 해주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속상했는데 어떤 자매가 (사랑부) 아이들의 천사 도우미를 해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몸이) 이런데 어떻게 도와줘요? 엄청 많이 울었어요.”라고 최 집사는 전했다.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속상했지만 자매의 권유대로 2000년부터 사랑부 천사도우미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4일부터 열린 사랑부렘넌트수련회에도 최 집사는 천사도우미로 참석했다.
기도제목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이를 악물고 살아온 것 같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 아이들도 키우지 못했고 전 세계 이런 제자들을 만나지도 못했고, 류광수 목사님도 만나지 못했을 거예요. 임마누엘교회에서 영적인 비밀을 가면 갈수록 더 알게 되어진 것도 감사하고 많은 무속인들이 있지만 이제 그 속에서 제가 정말 증인이 되어졌으면 좋겠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무당들을 살려서 (무당들이) 영적인 비밀을 아는 전도자가 되어 줬으면 감사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많은 무속인들을 살리고 장애인들을 살리고 지역 현장을 살릴 수 있는 전도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최 집사는 마지막 기도제목을 전했다. 태산 같은 어려움 속에도 하나님은 최 집사의 손을 잡고 지키신 것이 최 집사의 인생 속에 보인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양으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1절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않네
후렴)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2절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되시니
길 잃어 버릴 염려 없네
3절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찬란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