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대교육 칼럼] 왜 지금 격대교육인가
“참된 복음의 언약을 후대에 남기는 격대교육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남길 자의 응답을 받는 것으로 노년에 행복을 가져다준다.”
1. 시골 대가족의 풍경, 그리고 할머니의 품
어릴 적 내가 자란 농촌의 집은 열 명이 넘는 식구가 함께 모여 사는 북적북적한 대가족이었다. 새벽 일찍부터 일터로 향했던 어른들은 아침, 점심, 저녁때가 되면 어김없이 한자리에 모여 밥상머리에 둘러앉곤 했다.
그 시절 어린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은 할머니와 함께 노는 시간이었다. 누나와 여동생이 있었지만, 남아선호사상이 짙게 남아있던 시골이라 할머니는 유독 나를 예뻐하고 챙겨주셨다.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기억이 어찌나 강렬한지, 나중에 철이 들고 나서 누나와 여동생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을 정도였다.
할머니는 종종 “너희들이 복작거리며 있으니 집안에 활기가 넘쳐 참 좋다”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육순 무렵부터 시작해 칠순, 여든이 넘을 때까지 손주들을 품어 기르셨으니, 평생에 걸쳐 격대교육(隔代敎育)을 실천하신 나의 할머니는 참으로 의미 있고 아름다운 노후를 보내신 셈이다.
2. 키케로가 말한 노년의 네 가지 축복
로마 시대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키케로는 기원전 44년, 자신의 나이 62세에 <노년에 관하여>라는 명저를 펴냈다. 당시 지혜롭고 존경받는 인물이었던 84세의 ‘카토’를 주인공으로 세워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두 젊은이가 카토에게 “어르신, 노년은 참 힘들고 서글픈 시기라는데 어떻게 이토록 평안하게 사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이에 카토는 “젊은이들이여, 노년은 불행이 아니라네. 오히려 축복이지”라고 답하며 노년의 참된 가치를 풀어놓는다.
키케로는 노년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네 가지를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첫째는 몸을 돌보는 것이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절제하며 먹고, 충분히 휴식해야 한다.
둘째는 마음을 가꾸는 것이다. 책을 읽고, 사색하며, 배움의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카토는 80세에 새로운 언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뇌도 근육처럼 쓰지 않으면 퇴화하기에, 평생 배우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셋째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이다. 가족, 친구, 이웃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을 표현하고, 갈등은 풀고,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넷째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다. 봉사하거나, 가르치거나, 무언가를 남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바로 ‘격대교육’의 진가가 드러난다.
격대교육은 조부모가 손자녀를 양육하며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교육이다. 키케로는 인생을 오래 산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깊은 통찰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운 교훈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이야말로 노년의 가장 숭고한 역할이라고 보았다. 정직하게 살고, 성실하게 일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삶의 태도가 쌓여 노년의 명예와 존경이 된다는 것이다.
3. 세대를 잇는 언약의 통로, 성경 속 격대교육
그리스도인에게 격대교육은 단순한 육아 조력을 넘어선다. 가문의 영적 언약이 후대로 흘러가는 축복의 통로이자, 세대와 세대를 믿음으로 잇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언제나 당대에 머물지 않고 다음 세대를 향해 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개인의 복에 멈추지 않고, 그의 후손과 가문을 향한 언약을 함께 주셨다. “내가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는 말씀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약속이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 한 가정을 세우시고, 그 가정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어가셨다.
이 영적 언약을 후대에 전달하는 격대교육의 핵심은 말에 있지 않고 ‘삶의 본(本)’에 있다. 성경 속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라고 고백했다.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나오미의 인도 아래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아들 ‘오벳’을 낳았다. 이 오벳이 바로 훗날 다윗왕의 할아버지다. 성경은 “나오미가 아기를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룻 4:16)라고 기록한다. 나오미는 노년에 손자 오벳을 품에 안고 신앙의 격대교육을 정성껏 베풀었던 것이다.
노년은 인생의 불이 꺼져가는 황혼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는 가장 찬란한 시기이다.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았고, 갈렙은 85세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외쳤으며, 사도 요한은 90세가 넘은 노년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하나님은 육신의 나이가 아니라 사명의 뜨거움을 보신다. 복음의 언약을 손주들에게 전하는 격대교육이야말로 노년에 감당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사명이다.
4. 영원히 남을 언약의 유산 대물림
어릴 적 나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품어주셨던 할머니를 떠올려 본다. 그 따스한 사랑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모진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 인생의 깊은 영적 뿌리가 되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당신이 남긴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큰지 다 알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의 눈물 어린 기도와 사랑, 조부모 세대의 신앙고백을 결코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흘려보내고 계셨다.
격대교육은 단순히 맞벌이 자녀를 돕는 보조 수단이 아니다. 언약의 대물림이며 믿음의 거룩한 계승이다. 조부모 세대가 손주들의 손을 잡고 복음을 전하며, 기도의 무릎을 보여주고, 삶의 지혜를 심어줄 때 가정은 믿음의 왕가로 세워지고 교회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준비하게 된다. 오늘도 하나님은 노년의 우리에게 다정하게 묻고 계신다.
“너는 사랑하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주겠느냐?”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된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여자의 후손, 이분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끝내시고 부활, 승천하사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완전하고 정확한 복음과 언약을 후대에 남겨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격대교육의 본질이며, 하나님께서 이 땅의 조부모 세대에게 맡기신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사명이다.
(2026.8.28. 영도 앞바다가 보이는 서재에서. 임마누엘교회 김홍도 장로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