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넌트 소식] 초기 선교사 발자취로 확인한 영적 황제의 여정

[렘넌트 소식] 초기 선교사 발자취로 확인한 영적 황제의 여정

[렘넌트 소식] 초기 선교사 발자취로 확인한 영적 황제의 여정

대구, 포항 초신 Rt, 초기 선교사 이정표 순례 여정을 가다

대구 포항 초등신학원 렘넌트들이 영적황제의 언약을 잡고 우리나라 초기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확인했다. 26명의 렘넌트와 학부모의 여정을 인솔교사로 참여한 구미예광교회 이화자 사모가 자세하게 기록한 일기를 보내왔다. 일기를 통해 계산 없이 조선 땅을 밟은 초기 선교사들이 누린 영적황제의 여정을 함께 누리시기 바란다.

(달력 아이콘이나 날짜 앞에 뭔가 구분해주면 좋겠어요.) 8월 12일 수요일

4개 도시 순회 여정 시작

세계 렘넌트대회를 마치고 ‘대구, 포항 초신 영적 황제의 국내 초기 선교사 이정표 순례’ 여정이 시작되었다. 8월 12일부터 15일까지 3박 4일 동안 인천, 강화, 군산, 서천의 국내 초기 선교사 이정표를 차례대로 순례할 예정이다. 대구, 포항 초신 강사와 인솔교사, 골든벨 우승 렘넌트와 일부 학부모 등 26명이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세계 렘넌트대회 때 받은 ‘영적 황제의 비밀 3가지’를 마음에 품고 햇살 뜨거운 8월에 성삼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여정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 제목을 가지고 출발했다. 선교사님들의 선교 여정을 확인하며 한 나라, 한 민족을 살릴 절대 망대로 서야 할 이유를 발견하고 대한민국 초기 선교 이정표를 보며 237 5000 종족의 이정표를 미리 그리는 시간이 될 것을 믿는다. 선교사의 눈물과 헌신의 발자취를 보며 7Point(남은 자, 순례자, 정복자, 흩어진 자, 파수꾼, 정탐꾼, 기를 든 자) 제자의 삶을 위해 영적 황제인 렘넌트 자신의 CVDIP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했다. 아울러 국내 선교의 흐름을 보며 ‘영적황제 미션’에 도전하는 제자가 세워지길 마음에 담았다.

선교사의 발자취 속 절대 망대로

초신 순례팀은 12일 오전 8시에 왜관 선교교회에 도착하였다. 박우영 사모님이 안내사항을 전달하시고 기도로 출발했다. “우리가 오늘 선교 비전 캠프를 가는 이유는 대한민국 초기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보며 절대 망대의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한 민족을 가슴에 품으면 한 민족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우리는 “나는 영적황제이다.”라고 한목소리로 외친 후 출발했다. 중간에 문경휴게소를 거치고 용인휴게소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먹었다. 버스에서 내려 휴게 식당 오가는 길에 햇볕은 뜨거웠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너무 상쾌했다. 최상의 날씨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순례팀을 이끄시는 에벤에셀 관광 가이드 목사님은 관광, 여행, 순례의 차이를 말씀하시면서 “순례는 변화와 혁신이다.”라고 강조하셨다. 즐기고 배우는 것을 넘어 나를 변화시키는 순례의 여정이 매우 감사했다.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앞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오후 1시 30분쯤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이 있는 제물포에 도착했다. 우리가 이 순례자의 여정 속에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바로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이다. 파란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기념탑은 순교자적 선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인천기독교연합회의 건의에 따라 1986년 3월 30일 준공되었다고 한다. 그 웅장한 모습은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부부의 모진 박해와 수난 속에서 2세기 동안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한국 기독교의 기적을 말없이 전해준다. 황무한 땅에 닻을 내린 숭고한 선교 정신이 오늘 우리의 가슴에도 저 태양만큼이나 뜨겁게 전해오는 듯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도착한 인천 제물포구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는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자 인천 제물포에 처음 들어왔다. 아펜젤러는 그의 도착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실었다고 한다. “우리는 부활절 날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죽음의 철창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풍족한 삶을 버리고 영적으로 황무하고 척박한 한국에 온 이유는 오직 복음의 빛을 전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선교의 시작점은 누군가의 발화점이 된다. 제물포구는 당시 어촌지역으로 20여 가구만이 살았으며 항만시설도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거룻배를 타고 1시간 만에 4.8 ㎞ 정도 떨어진 제물포에 첫발을 내렸다. 우리는 근처 청일조계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제물포에는 1884년 청국 조계가 설정되는 경계 지역으로 청일조계지 경계 계단이 있다. 인천 개항 전후로 이 조계지는 당시 치외법권 지역이었으나 이후 크게 발전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 들어와 묵었던 옛 대불호텔은 지금은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탈바꿈 하였는데 인천 개항장 문화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인천 내리교회

조선 최초 교회, 인천 내리교회

그리고 인천 내리교회를 탐방했는데 이 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이며 개척하신 선교사가 바로 아펜젤러 목사님이다. 2대는 존스 선교사 3대는 한국인 김기범 목사이다. 내리교회에는 아펜젤러 기념관도 있었다. 교회는 제법 규모가 크다. 생명을 담보로 한국에 온 아펜젤러의 복음의 열정이 내리교회에 아직도 넘쳐흐를까? 복음이 변질되지 않고 오직 근본문제 해결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후대에까지 전달되기를 기도했다. 저녁을 일찍 먹고 8시부터 10시까지 포럼을 했다. 피곤했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감사했다.

8월 13일 목요일

기도수첩 말씀은 300%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5시 30분, 잠자리에서 꿈지럭거리다가 6시에 일어나 샤워하고 나와 한 팀인 렘넌트를 깨워 함께 기도수첩을 했다. 기도수첩 말씀이 300%, 오늘 순례 여정 속에 237 5천 종족을 살릴 300% 황제를 살릴 영적 황제로 절대 망대가 세워지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했다. 조식 뷔페를 맛있게 먹고, 숙소 앞 공원에서 잠깐 운동을 했다. 아침 공기가 너무 상쾌했다. 오전에 월미 바다열차를 타고 강화 교산교회와 강화의 안디옥 교회, 홍의 교회를 순례한다. 강화 기독교 역사관에서 강화에서 시작된 기독교 역사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숙소에서 9시에 강화도로 출발했다. 거의 50분을 달려 강화도에 도착해서 월미 바다열차를 탔다. 월미산을 돌아 약 6km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45분간 달렸다. 멀리 영종대교와 바다가 보여 오랜만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세계최대야외벽화가 눈에 들어왔다. 월미도 바닷가 양옆에 카페거리 맥아더 동상이 바닷가에 자리 잡은 모습이 보인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 동상을 볼 때 너무 감격스러웠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윤요오호 사건 등 강화도 지역은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다. 열차 여행을 마치고 바로 점심식사를 했다. 아기자기 꽃으로 꾸민 식당에서 청국장을 맛있게 먹었다. 이어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강화교산교회와 강화의 안디옥교회인 홍의교회를 순례했다.

강화교산교회와 복음 명문가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병인양요가 일어났다.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병인양요 때 천주교 금압령으로 프랑스 신부 9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수천 명이 처형되었다니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어이없는 일이다. 병인양요 때 조선을 탈출한 리델 신부가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에게 사실을 알려 보복 원정이 일어났다. 1892년 제물포구역 책임자로 부임한 존스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강화에 찾아왔다. 하지만 서양 사람을 오랑캐라고 배척하던 때라 존스는 돌아가야만 했다. 제물포에서 주막을 하던 이승환을 통해 강화 선교의 문이 열려졌다. 이승환은 존스에게 복음을 받았지만, 세례를 받지 않고 강화에 계신 어머니가 먼저 세례를 받기 원했다. 이승환은 존스 선교사에게 강화에 와서 어머니에게 세례를 요청했다. 하지만 다리목 마을의 경주 김씨 양반 가문에서 크게 반발했다. 만일 서양 오랑캐가 오면 그가 가는 집을 불 질러 버리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존스가 있는 배에 가기 위해 이승환은 보름달이 환하게 빛나는 달밤에 어머니를 모시고 다리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갯벌을 지나 나룻배를 타고 가서 선교사의 배에 올랐다. 배 위에서 세례를 베푸니 이것이 강화의 복음의 씨앗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른바 선상세례인데 이승환이 살았던 마을에 강화의 첫감리교회인 강화교산교회가 세워졌다.

복음 명문가 김상임 생가

이어서 김상임이 가산과 서당을 버리고 믿음을 갖자 가족 일가친척이 잇달아 개종해서 갑자기 교인이 불어났다. 그리고 강화 교산교회 맞은 편 마을에 있는 김상임 생가와 가족묘를 보았다. 엄청난 가족묘를 보면서 우리 가족이 복음의 명문가가 되기를 기도했다. 한 번 더 우리나라 복음이 들어올 당시의 혼란한 시대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우리가 복음을 받게 된 것이 너무 감사했다.

강화교산교회

홍의교회와 강화 기독교 역사 기념관

홍의교회는 강화도에 두 번째 세워진 교회이다. 마을 훈장인 박능일이 개종을 하고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자 홍의 마을 토착 유지들이 개종을 하게 되어 1년 만에 교인 수가 80명이 되었다. 이 교회는 1982년 붉은 벽돌 예배당을 새롭게 건축하고 2008년 역사전시실을 개설하였다. 오후 늦게 강화 기독교 역사 기념관을 순례했다. 기념관 입구에는 강화의 서쪽 시루미에 인천내리교회 존스 선교사가 이승환의 어머니에게 배 위에서 세례를 베푸는 모형이 있었다. 강화에는 기독교 역사를 볼 수 있는 기념관과 교회가 많이 있어서 참 뿌듯했다. 이 뜨거운 선교사의 헌신과 기도와 눈물이 곳곳에 배어있는 감격의 현장을 순례할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

강화 기독교 역사 기념관

연미정에서 북한복음화 언약 확인

강화읍 월곶리에 있는 연미정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제 24호로 지정되어있다. 이곳에 올라갈 때는 다소 더웠지만, 정자에 가니 북으로 개성시와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에서 흘러 내려오는 한강 너머로 북한을 눈앞에 보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저 북한에 복음이 들어가기를 합심하여 기도했다. 지금 우리 다락방은 북한을 놓고 기도하는 사마리아 기도팀이 있다. 이 뜨거운 기도의 능력이 시공간 초월하여 역사하실 줄을 믿는다. 내일은 군산에 간다. 전킨, 드류 선교사 표지석, 기념비를 보고 군산 근대박물관도 순례하게 된다.

연미정에서 북한을 위해 기도

8월 14일 금요일

777 기도로 하루 시작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777기도를 하고 식사를 먼저 했다. 우리 팀은 8시 30분에 모여서 기도수첩을 하기로 했다. 서정옥 사모님과 렘넌트 6명이 모여 산만하지만 그래도 말씀 듣는 시간 만큼은 집중하는 모습이 감사했다. 기도수첩 말씀 제목은 ‘3시대의 리더가 되라’이다. 리더가 되려면 요셉처럼 기도를 알아야 한다. 다윗이 일천망대를 세우고 곳곳에 파수꾼을 세웠다. 파수꾼은 빛을 비추는 사람이다. 영적황제로 부름 받은 우리 렘넌트들이 선교 순례 여정을 통해 237 5천 종족 황무한 땅에 빛의 파수꾼으로 세워지길 기도했다.

군산에서 만난 전킨, 드류 선교사

인천 제물포 원티드 호텔에서 군산으로 출발한 시간은 9시 10분, 군산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 예상했지만,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라 길이 많이 막혔다. 10시 35분 쯤 송상 휴게소에 들렀다. 1시쯤에 군산에 도착하여 돼지갈비 김치찌개를 먹었다. 잠깐 쉬고 군산에 처음 복음을 전한 전킨, 드루 선교사 표지석이 있는 선교사 기념비가 있는 곳에 갔다. 1895년 3월 전킨과 드루 선교사가 군산항을 통해 호남 지역에 첫발을 내디뎠다. 수덕산 초가집을 매입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의료 사역을 하였으며 영명학교, 멜본딘여학교 등을 설립하여 교육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두 선교사의 130년 선교 발자취와 활동을 보존하기 위해 3층 규모의 군산 선교역사관이 건립되었다. 우리 팀 뿐 아니라 몇몇 기독교인들이 발길을 볼 수 있었다. 이어서 바닷가 바로 앞에 우뚝 선 군산 선교기념탑을 보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군산 선교기념탑은 군산에 복음이 전해진 역사와 초기 선교사들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이다. 군산이 호남 지역 기독교 선교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선교기념탑은 배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는데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군산에 들어왔다는 역사적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2024년에 준공식이 열렸고 약 7미터 높이의 계단형 조형물로 조성되었다. 불과 2년 전에 세워졌다니 우리나라의 복음의 열정이 계속되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전킨 드루 선교사 기념비

포럼과 예배는 필수

5시쯤 팀별로 저녁 식사 시간을 주었는데 우리 팀 8명은 바지락 칼국수를 먹었다. 빵으로 유명한 이성당 빵집 바로 앞인데 바지락 반 국수 반일 정도로 바지락이 많이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은파 호수 앞에 위치한 은파팰리스 호텔로 이동했다. 숙소가 너무 큼직하고 깨끗했다. 잠깐 짐을 풀고 7시에 3층에 모여 박우영 사모님 주관으로 예배를 드리고 포럼을 했다. 사모님께서는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영적 황제’로 살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창세기 41장 38절에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복음은 내 생명을 죽기까지 내어 주는 것이 진짜 복음이다. 말로만 생명을 살릴 수 없다.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쏟으시고 우리로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 나만 편안하게 나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가짜이다. 선교사들이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 복음을 전하셨다.

말씀에 집중하는 렘넌트들

선교사들의 여정 속 확인한 복음의 감격

군산에 복음을 들고 온 전킨 선교사는 한국에서 아들 4명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킨 선교사는 기도하며 한국에 남아서 복음을 전했다. 선교사님들이 핏값을 뿌리며 복음을 전해 한국의 흑암이 꺾였다. 존헤론 선교사 또한 조선의 의료선교사로 온 분인데 그는 장티푸스 풍토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 땅에 발을 붙이기도 전에 붙잡혀 대동강변에서 순교를 당했다. 우리는 복음의 빚진자로 살아야 한다. 복음은 희생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나는 무엇을 드려야하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가슴 뜨거움을 몸으로 느꼈다. 우리 초등신학원 강사와 인솔교사, 영적 황제로 살기 원하는 렘넌트들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온종일 강행군으로 지친 몸이었지만 영적으로는 그 언제보다 충만하고 행복한 예배 시간이었다. ‘3시대의 리더가 돼라’는 기도수첩 오늘의 말씀처럼 우리 렘넌트들은 이 시대의 빛의 파수꾼이요 영적 리더, 영적 황제로 세워지기를 기도했다.

8월 15일 토요일 ‘

기도수첩 예배로 하루 시작

오늘은 새벽 6시에 모여 기도수첩으로 예배를 드렸다. ‘찬양할 때 일어나는 일’(행 16:19~31)에 대한 말씀을 박우영 사모님이 선포해 주셨다. ‘영적 황제’들은 사실, 진실, 영적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계신 곳에 찬양할 때 천사들이 움직이며 사탄이 무너진다. 힘들 때, 어려울 때 속상할 때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예배 시간에 찬양에 집중하라. 찬양은 노래로 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은 찬양하는 사람을 뽑는다. 렘넌트들이 저녁 늦게까지 일정을 소화하고 이른 아침 예배 시간에 지친 기색이 없이 말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대견했다. 8시쯤 호텔 뷔페식을 먹고 9시에 은파 팰리스 호텔을 출발하여 서천의 ‘성경전래지 기념관’으로 향했다.

성경전래지 기념관

한국최초 성경전래지 기념관은 한국 최초 성경 전래 200주년을 맞아 2016년 건립되었다. 1816년(순조 16)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가 마량진 길곳에 일시 정박하였고, 이 함선의 선장인 머리 맥스웰 함장이 조선의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전한 것이 우리나라에 성경이 전래되었다. 이 성경은 ‘킹 제임스 성경’인데 영국의 ‘바실록 항해 여행기’에 멕스웰 함장이 조선인에게 성경 한 권을 건네준 사실이 적혀있다고 한다. 이 ‘킹 제임스 성경’은 현재 원본이 30권 정도 남아 있는데 그중 한 권이 이 기념관에 전시된 것을 보고 참 신기했다. 선교사보다 먼저 한국에 온 성경이 아니겠는가! 2008년에 사단법인 한국최초성경전래지사업회가 인가를 받아 2014년에 착수, 2016년 9월 5일 개관하였다. 그리고 2023년 6월 5일 기념관 개관 7주뇬 및 한국최초 성경 전래 7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다. 이곳에 가니 우리 팀뿐 아니라 몇 기독교 단체의 관람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선교 뿌리를 찾는 교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다.

아펜젤러순직기념관

아펜젤러 순직기념관

이어서 2012년에 개관한 ‘아펜젤러순직기념관’에 갔다. 그는 우리나라에 온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인데 인천의 내리교회와 서울 정동제일교회를 세웠고, 교육기관으로는 배재학당을 세웠다. 그는 성경 번역에 관심이 많았는데 1902년 배를 타고 성경 번역에 관한 회의로 목포로 가던 중 이곳 서천 바다에서 배 끼리 부딪혀 침몰한 후 돌아가셨다. 약 17년간의 짧은 한국 선교사역을 한 후 돌아가셨다니 너무 안타깝다. 실제 무덤은 양화진에 있지만, 이곳 서천에서 순교하셨으므로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이 이곳에 세워졌다.

아펜젤러순교기념관에서 퀴즈

퀴즈와 현장캠프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장이 되시는 목사님께서 아펜젤러 선교사님에 대한 재미있는 퀴즈를 통해 렘넌트들의 이해를 도왔다. 초등신학원에서 복음의 뿌리를 내린 렘넌트들이 나름대로 대답을 잘했다. 관장 목사님께서 이렇게 선교사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 정말 오랜만이라며 뿌듯해하셨다. 지난 2022년 아펜젤러 순직기념관에서 순직 120주년 추모 예배 및 기념비 제막식을 열었다고 한다. 12시에 바다 갯벌을 안고 서해안에 즐비해 있는 식당 중에서 누룽지 치즈돈가스를 줄을 서서 기다려 점심을 먹었다. 누룽지와 치즈 위에 돈가스를 얹어 먹으니 별미였다. 마침 옆자리에 있는 기사님께 복음을 전했다. 영접은 하지 않았지만, 함께 기도하고 복음 포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감사했다. 1시 20분쯤 고군산군도를 향해 갔다. 전북 군산군도에 있는 9개 교회를 돌아볼 예정이었지만 연휴로 인해 길이 많이 막혀서 아쉬웠다. 다만 고군산군도를 이어 연결하는 새만금방조제를 구경했다. 엄청난 길이의 다리였다. 차로 가다가 중간에 내려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비록 고군산군도의 교회들을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곳의 섬마다 교회가 있다니 참으로 감사했다.

영적 황제로 서는 감사한 순례 여행

새만금방조제에서 3시 30분 출발하여 왜관으로 향했다. 차가 막히지 않고 잘 달렸다. 6시 반쯤 금강휴게소에서 각자 식사를 하고 7시에 출발 왜관선교교회에 8시에 도착하여 모든 순례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수첩, 아침 9시부터 강행군 저녁이면 10시까지 포럼 등으로 비록 육신은 피곤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흑암에 갇혀 아무것도 없는 황무한 땅에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한국에 오신 선교사님들이 너무나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분들의 희생과 기도가 손끝과 가슴에 스며오는 것 같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해 황무한 237 5천 종족을 향해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진정한 기도를 해야겠다. ‘순례는 변화다’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이제야 깨달아진다. 내 마음에 너무나 많은 변화가 옴을 느낀다. 그냥 선교가 아닌 우리의 시간, 몸, 마음, 돈을 바친 살아있는 선교를 마음에 품어야겠다. 무엇보다 우리 렘넌트들이 영적 황제로 237 5천 종족을 향해 기도하는 렘넌트로 자라기를 소원해 본다. 너무나 의미 있고 감사한 순례 여행이었다.

[선교 소식] 네팔 선교사역 보고

[선교 소식] 네팔 선교사역 보고 양윤호 선교사 네팔 선교의 시작 2006년 4월 저는 급성 간부전으로 죽음의 위기에서 류광수 목사님과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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