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소식] 복음 복지 랜드마크 언약의 여정




충청북도 옥천의 장애인 센터. 광주에덴교회 홍현진 전도사는 6개 센터를 관리하고 있다.
광주에덴교회 홍현진 전도사는 충청북도 옥천에서 장애인 센터 여섯 곳을 관리하고 있다. ‘충북장애인부모연대옥천지회 옥천바하센터’ 세 곳과 ‘옥천군장애인가족지원센터’, ‘장애인 야학’, ‘사회적협동조합 행복해져라’ 등 여섯 곳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근로자가 30명, 보조인력이 42명이고, 수 많은 장애인과 가족들이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복지관련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던 홍 전도사의 인생이 바뀐 것은 복음 복지의 언약을 잡고부터다.
2017년 ‘전도 복지’ 언약 선포
2017년 사회복지사명자대회에서 전도 복지 언약이 선포되었다. “사회 복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복지 전도는 여러분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이 얘기를 드린다.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될 것은 시간 갈수록 복지에 전도의 밭이 너무 많구나! 이렇게 결론이 나야 한다. 그리고 복지 이게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전도구나, 이렇게 되어야 우리 멤버들이 살아나고 응답도 받게 된다. 이미 있는 복지를 활용해서 전도 운동부터 펴라. … 가장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전도가 복지다. 복지 잘못해버리면 그 사람 거지 만든다. 복지 잘해버리면 그 사람 살리는 것이다. … 복지는 전도의 모든 것이다. 복지는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복지 대상자가 치유 되는 것이다. 복지 (선교)는 단순하게 어느 나라를 돕는 게 아니다. 그 나라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복지 대상으로 죽어가는 후대들을 도와주기만 하면 안 된다. 그들을 살려내야 된다.” (제11차 사회복지사명자대회 2017.5.10.)
복음 복지 랜드마크
전도 복지 언약의 흐름 속에 대구에서 열린 한 집회에서 홍 전도사는 ‘복음 복지 랜드마크’의 언약을 잡았다. 홍 전도사는 “류광수 목사님이 메시지를 하시는데 저한테는 ‘하나님이 제가 사는 옥천을 복음 복지의 랜드마크가 되게 하겠다!’ 이렇게 들린 거예요. 그때는 용어도 이해가 안될 때였는데 저는 이상하게 그렇게 들렸어요. 오는 길에 담임 목사님(서말심 목사)께서 포럼하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것만 남았어요.”라고 회상했다. 서말심 목사는 “홍 전도사님(당시 집사)이 그때 어떤 장애에 관한 일을 하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자기가 사는 옥천을 ‘복음 복지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예요. 저는 약간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했어요.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거든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절대불가능한 일을 언약으로 잡았는데 홍 전도사는 지금 성취되는 여정 속에 있다. 그 여정의 시작에 전도자와의 만남이 있었다.
이단에 빠졌던 영적문제 덩어리
복음을 만나기 전 홍 전도사는 이단에 빠져 전라도 광주에 왔다.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길 거리에서 띠를 두르고 ‘말세다! 예수 믿어야된다!’하고 외치고 다녔는데 그곳에서 신학교에 갈 것을 권했다. 그 길로 다니던 한양대학교를 휴학하고 광주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 신학교에서 지금 담임으로 섬기고 있는 서 목사(당시 전도사)를 처음 만났다. 홍 전도사는 “히브리어 수업 시간이었는데 여자 교수님이 한 분 들어오셨어요. ‘여러분 여기 왜 왔어요?’라고 물으시더니 마가복음 3장 13절부터 15절을 펴라고 하시더라고요.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말씀하시는데 그때부터 저한테 성령에 임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는 예수님이 원해서 불렀고, 부르신 이유는 함께 있기 위한 게 1번이라는 거죠.”라고 회상했다. 홍 전도사는 히브리어 수업을 통해 계속해서 충격적인 복음 메시지를 듣게 되었다. “하루는 서 목사님이 ‘인간의 근본 문제가 뭔지 아시오?’ 물으시고는 창세기 3장부터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풀어주시는 거예요.”라고 말한 홍 전도사는 그때부터 성경이 가깝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일본현장캠프
다락방전도운동 속으로
복음을 받고 보니 이단에 빠진 자신을 위해 광주로 함께 내려와 준 언니가 생각났다. 서 목사에게 부탁해 언니 부부에게 복음을 전했다. 홍 전도사는 “그런데 영접하고 끝나면 안 되잖아요. 성경 공부를 해줘야 하는데 (서 목사님이) 해주실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여쭤보니 금요일 아침 10시에 핵심이라는 데로 오래요. 그래서 가족들 다 같이 차를 타고 갔어요. 제일 앞에 앉히시고 ‘영은 눈을 통해서 전달되니까 (목사님) 눈을 딱 쳐다보고 눈 한번 깜빡이지 말고 들으라’는 거예요. 끝나고 ‘복음 편지’하고 ‘영접의 의미와 실제’ 테이프를 주시면서 ‘귀에 도시바(이어폰)를 끼고 24시간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오세요.’ 이러시더라고요. 테이프를 계속 들으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이 다 깨지는 거예요. 내 속에 (복음 외에) 섞여 있는 것들이 정리가 되었어요. 어느 날 서 목사님이 제가 다녔던 대학교를 정상적으로 마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홍 전도사는 서울로 돌아와 대학을 마쳤고 언니 가족은 에덴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서 목사는 “홍 전도사님이 그 전에 교회를 15년 다녔대요. 근데 그리스도를 처음 들어봤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언니하고 형부하고 형부의 형, 조카까지 몇 명이 와서 영접을 시켰어요. 제가 그때 다락방을 만난 지 얼마 안된 때였다니까요. 그러니 그 사람들이 놀랐겠어요, 제가 놀라겠어요? 제가 더 놀래 버렸죠. 그러고는 다음에는 뭘 하냐고 자꾸 물어보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도 처음이라 일단 핵심에 나오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핵심에 나오고, 전도신학원 가보라 그러면 신학원에 가고 그러면서 쭉 따라오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안승민 렘넌트가 지난 10일 충북도립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왼쪽부터 안창현 안수집사, 안승민(둘째), 안승이(막내), 홍현진 전도사, 안승언(첫째)
작은 아들이 지적장애인
서울로 온 이후로도 홍 전도사는 서 목사와 계속 소통하며 지냈다. 2001년 홍 전도사는 불신자였던 남편과 결혼했다. 시집은 1년에 제사를 46번 지내는 영적 문제가 많은 집안이었다. 결혼 후 가문의 흑암과 싸우는 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홍 전도사에게 특별한 아이를 주셨다. 홍 전도사는 “둘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얼마 안 있어 지적장애인 판정을 받았어요. 충격이 너무 커서 현실감이 없었고, 3년 정도 기도와 예배로 하나님께 매달려 울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보니 승민이(둘째 아들) 덕분에 복지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죠.”라고 홍 전도사는 전했다. 2010년 홍 전도사 가족은 남편의 고향인 옥천으로 오게 되었다. 옥천에서 광주까지는 2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매주 광주 에덴교회에 출석했다. 홍 전도사를 통해 남편과 시어머니도 영접해 함께 신앙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남편이 전도해야될 사람이 있다며 전화를 했다. 홍 전도사가 가봤더니 “남편이 ‘박 대표 자녀도 자폐래.’ 하면서 두 남자(남편과 박 대표)가 환자처럼 울고 있는 거예요. 박 대표에게 복음을 전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날 만난 사람은 건설회사 대표로 자폐성장애를 가진 딸이 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박 대표는 특전사 출신이라 귀신도 이겨보겠다는 마음으로 자기가 신을 받겠다고 자원했다. 그런데 막상 신을 받고부터 귀신이 보여 자주 아내와 다퉜고, 아내를 한 번 때렸는데 광대뼈가 함몰돼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홍 전도사가 다시 박 대표를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홍 전도사는 “예수님을 영접하자고 그랬더니, 박 대표가 입이 안 벌어진대요. 입이 딱 굳어가지고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목사님의 말씀 중에 돕는 배필, 여자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분 아내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복음을 전했어요. 그 친구가 병원에서 울면서 예수님을 영접 했어요. 그리고 다시 박 대표에게 와 복음을 전했어요. 입을 벌려 영접하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30분 넘게 영접을 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영접 후 박 대표는 집안 곳곳에 붙여둔 부적을 다 뗐다. “금고 안, 냉장고 안, 집안 곳곳에 부적이 얼마나 많은지.. 제기(제사에 사용하는 그릇)도 다 모아서 하루 만에 다 태우더라고요.”라고 홍 전도사는 전했다. 이 사건을 통해 박 대표의 장인어른과 장모까지 영접하고, 온 가족이 교회로 인도 되었다.

김수경 집사의 어머니도 영접해 함께 훈련받고 있다.
복지 현장의 문이 열리다
홍 전도사는 박 대표 아내인 김수경 집사와 가깝게 지내면서 함께 아이를 돌봐주기 시작했다.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는) 내 아이를 아무한테도 못 맡기거든요. 그런데 김 집사는 사람이 철저하고 중심이 괜찮아요. 김 집사도 저를 볼 때 저라면 자기 아이를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같이 아이를 돌봐줬는데 돌아보니 그때부터 하나님이 ‘활동지원(장애인을 돕는 서비스)’을 체험시키신 것 같아요. 복지 밑바닥부터 걷게 하신 거죠.”라고 전했다. 그리고 홍 전도사가 복음 복지 랜드마크의 언약을 잡은 2017년에 한 사건이 일어났다. 홍 전도사는 “부모연대에서 수탁받아 운영하던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 다니는 직원들이 자꾸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 한 사람이 들어가서 일해야 되는데 저보고 들어와 달래요. 하나님의 계획인가 싶어 들어갔는데, 복지 일이 쉽지가 않더라고요. 서류 행정도 하고, 장애인 현장도 뛰고, 회계 정리까지 해야 돼서 완벽하게 일이 손에 익기까지 2년이 걸렸어요.”라고 전했다.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
홍 전도사는 “처음에 저에게 직책 보조비를 20만 원 줬어요. 오히려 제 돈으로 후원을 해서 2년을 운영했더니, 지금까지도 개인부채가 있어요. 하나님께 ‘왜 돈을 안 주시나요?’ 물어볼 때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어라. 내가 너한테 필요한 만큼 줄게.’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법이 바뀌면서 급여가 뛰더라고요. 그 뒤로 마음에 믿음이 생겼어요. ‘시간표가 되면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생각하니까 조금 자유로워졌어요.”라고 회상했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의 일이 많아 홍 전도사는 집에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집에 오면 신랑이 화가 나 있는데 미안하다고 말할 시간도 없었어요. 양치질하고 ‘내일은 또 뭐해야되지?’ 정리하고 계속 이렇게 살았어요. 그런데 제 눈에 뭐가 보이냐면 ‘나를 그냥 여기다 세워놓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구나.’ 그게 보였어요. 일은 너무 힘들어요. 군수한테 가서 (도와달라고) 얘기해야 되고 센터 건물도 얻으러 다녀야되고.. 힘든데 어렵게 가서 말하고 나면 일이 되어져요. 안 될 일인데. 이건 진짜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라고 홍 전도사는 고백했다. 과정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돌아보면 내 수고로움에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다. 홍 전도사는 “항상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게 하나님은 오버플러스(Overplus) 하나님이세요. 저는 5를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항상 50을 채워주세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주세요. 센터 하나를 세우면 아직 불안정하거든요. 그런데 1년 뒤면 확 성장해 있는 거예요. 빚도 청산이 되고..”라고 전했다.


이지선 성도와 이성복 성도. 이 두 사람은 센터에 나와 활동하고 예배에도 참석하고 있다.
충청북도 모두가 아는 장애인
복지 현장에서 하나님은 사도행전 3장의 앉은뱅이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다. 이지선 성도(당시 불신자)다. 홍 전도사가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하던 2019년 이지선 성도의 남동생인 이성복 성도(당시 불신자)를 먼저 만났다. 지적장애인 이성복 성도의 상태가 뭔가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한 센터장이 홍 전도사를 데리고 이성복 성도에 집에 갔다. 홍 전도사는 “가서 보니까 집안에 철문이 있어요. 그런데 그 철문 밑으로 지선 씨를 봤는데 귀신 얼굴 같았어요. 상태가 말도 못하게 심각하더라고요”라고 첫 만남을 전했다. 이지선 성도는 31년 동안 옷을 벗고 시멘트 바닥으로 된 우리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었다. 홍 전도사는 “옷을 안 입고 김장 담글 때 쓰는 빨간 고무다라 있죠. 그걸 이불로 삼고 있는 거예요. 돼지 죽같은 밥을 엄마가 주는데 엄마도 지적장애인이에요. 가족이 6명인데, 아버지 알콜중독, 엄마 지적장애, 큰딸 하나만 비장애인이고, 그 밑에 여동생이 제가 만난 이지선 성도인데 충북의 최강 장애인, 그리고 남동생 이성복 성도도 지적장애인, 막내 아들은 비장애인인데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어요.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더라고요. 돼지죽 같은 밥을 넣어주면 먹고 밥그릇은 (우리 밖으로) 집어던지고, 똥 싸면 똥 받아서 던지고. 그러니까 바닥에 신문지를 다 깔아놓은 거예요.”라고 홍 전도사는 충격적인 첫 만남을 전했다. 서 목사와 함께 다시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 홍 전도사는 “서 목사님이 그 친구를 처음 만나서 복음 메시지를 전하는데 그 친구가 영접을 순순히 잘 따라 하는 거예요.”라고 전했다. 영접 후 1주일만에 이지선 성도의 얼굴이 몰라보게 변했다. 옷을 입고 같이 다락방을 시작했다. 사실 이지선 성도는 충청북도 복지시설 관계자들이 다 아는 유명인으로 장애인 기관마다 돕겠다고 나섰봤지만 모두 포기하고 돌아선 절대불가능의 사람이었다. 서 목사는 “이지선 성도는 충청북도 전체에서 포기한 사람이예요. 홍 전도사님이 이 사람을 그 우리 같은 곳에서 꺼내고 저랑 가서 예배를 드리니까 충청북도 사람들이 다 지켜본 거예요. ‘과연 저 사람이 변할 수 있겠냐? 불가능하다.’ 그랬는데 이 사람이 좋아져 버리니까 군수며, 국회의원이며 우리를 다르게 보는 거예요. 지역에 증거가 되어버렸죠.”라고 전했다. 이지선 성도 뿐 아니라 오빠와 어머니도 영접하고 에덴교회 옥천지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집안의 한 명뿐인 비장애인 이지숙 집사는 홍 전도사의 센터에서 지금 같이 일하고 있다.
황폐한 곳으로 가라
장애인가족지원센터의 일이 손에 익었을 때쯤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홍 전도사는 “옥천군장애인부모연대회장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갑자기 그만두게 된 거예요. 그때부터 잠도 못 자고 일을 하게 되었어요. 한꺼번에 이빨이 다 빠지고 머리가 한 달 새에 다 새더라고요. 그때 메시지를 듣는데요, 류 목사님이 ‘황폐된 곳, 아무도 가지 않는 곳, 남들이 다 싫어하는 곳으로 가라. 다 망한 현장으로 가라.’는 거예요. 듣고 싶지 않아서 메시지를 껐어요. 딱 끄고 하나님께 안 간다고 했어요. 서 목사님에도 물어봤어요. 목사님께서 언약잡은 것이 있으니 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축하해주는데 저는 울었어요. 사실 가정 경제도 어려움이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완전히 하나님 앞에 힘을 쭉 빼고 하나님이 책임지시라고 기도하고 일했어요.”라고 전했다. 그 황폐한 곳에서 하나님은 유일성의 길로 인도하셨다. 홍 전도사는 “그냥 순종하고 지속했는데 하나님은 저의 입지를 달라지게 하셨어요. 남들은 하고 싶어서 애 달아 죽는 그런 사업들이, 다 저에게 와요. 저는 지금 일도 많아서 더 이상 할 수 없는데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희한하게 그 일을 할 때 하나님이 잘할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방법도 주시고 그러시는 거예요. 제 머릿 속에서 나왔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거예요.”라고 고백했다.




옷을 개는 교육, 운동, 야채포장, 요양보호사 보조 등 장애인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고 있다.
장애인이 혼자 살 수 있는 시스템
홍 전도사는 장애인이 부모 없이 혼자 살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홍 전도사는 “저희 아들에게 수건 개는 법을 가르치는데 6개월이 걸렸어요. 수건을 개서 화장실에 갖다 놓는 것까지 아들에게 계속 보여줬어요.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려요. 그런데 어느 날 딱 하게 되잖아요. 고거까지만 힘들지, 그다음부터는 스스로 해요. 자폐가 있는 아이는 그래요. 수건을 누가 건드려도 안 돼요. 꼭 자기가 그 일을 해내요. 속이지도 않고, 약속한 시간에 칼 같이 해요. 예배도 그래요. 한번 드리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수, 금, 토, 일요일 정해진 시간에 딱 예배를 드려요. 그리고 아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너무 즐거워해요.”라고 홍 전도사는 전했다. 요즘은 바쁜 엄마를 대신해 아들 안승민 렘넌트가 집 청소와 설거지를 해준다. 정해진 시간에 정갈하게 해줘서 홍 전도사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홍 전도사는 승민이를 통해 장애인들이 충분히 혼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부모연대는 그런 장애인을 위해 일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 채소를 포장하는 일이나 찜질방에 수건을 개는 일, 요양보호사를 보조해 주는 일 등이다. 한 번 일하기 시작하면 깔끔하게 하기 때문에 고용주들의 만족도가 높다. 장애인에게 전문성을 가르치는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전문인도 양성하고 있다. 부모가 없는 장애인을 이용하는 악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해 2월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에 관한 법이 통과되었다. 오는 2029년도에는 장애인의 직업을 교육하는 대학과 같은 ‘전공과(특수교육대상자가 고등학교를 졸업 후 가는 교육기관)’가 옥천에 들어선다. 200억 규모 예산으로 지난해 건축을 시작했다.
홍 전도사는 “저는 늘 겁쟁이고, 늘 게으르고 늘 연약해서… 정말 앉은뱅이보다 더한 영적 장애인입니다. 그런 저에게 때로는 믿음을, 때로는 용기를, 때로는 할 말을 넣어주셔서 지나온 모든 순간에 함께 하시며 저를 통해 주님께서 하실 일을 하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기에 감사밖에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는 주님의 도구가 되기에 한참 부족합니다. 주님께 저를 맡깁니다. 주님께서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이 감사하지만 이제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늘 저를 불신앙 속으로 끌고 내려갑니다. 3집중이 아니면 10명의 불신앙하는 정탐꾼이 될 때가 많습니다. 3집중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그 안에서 777 기도로 힘을 얻게 하셔서 여호수아, 갈렙으로 살다가 주님 앞에 가게 하옵소서.”라고 마지막 기도제목을 전했다. 절대 언약을 잡고 인생을 올인해 버린 홍 전도사의 삶을 보며 장애인 현장에 영적인 성전을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여정이 보인다. 우리의 인생을 언약의 여정으로 만드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임정희 기자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함께. 최근 하나님이 전문인 렘넌트들을 보내주셔서 함께 기도하며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