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불가능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세우시는 증인
절박한 자·빚진 자·영혼이 쓰라린 자… 아둘람으로 모이다
‘환난·빚·원통함’에 담긴 세 히브리어 묵상
מָצוֹק (mātsôwq 마초크), נֹשֶׁה (nw̄sheh 노쉐), מַר (mar 마르)
성경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노예가 세상을 변화시켰고, 살인한 도망자가 전 지구에 충격을 주었으며, 목동이 세계 최대 강국의 왕으로 급부상했다. 심지어 속국이 되어 주권마저 상실했던 지중해의 작은 나라에서 시작된 복음은 당시 세계 최대강국 로마를 무릎 꿇게 했다.
대단한 사람, 훌륭한 사람을 통해 237, 500 종족을 살리고 세계복음화를 이루는 영적황제가 되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보좌의 능력을 체험하고 오직 복음, 전도, 기도로 답을 낸 생명 걸 가치를 발견한 자를 사용하신다. 다만 체험한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느끼거나 눈으로 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무너진 그 자리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붙잡고 보좌의 능력을 힘 입어 자신의 현장에 답을 주는 자를 말한다
시편 32편 3절부터 4절에서 다윗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도 종일 신음했다고 토로한다. 뼈가 마르는 고통과 주의 손이 짓누르는 고통으로 인해 진액이 빠지고 삶이 메마르는 고통 속에 있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다윗의 위대함은 진정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절대불가능한 그 자리에서도 보좌의 능력을 바라보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무엘상 22장 2절을 보면 사울왕에게 쫓기는 다윗이었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왔다. 죽음의 위협을 받고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다윗은 보좌의 망대로 각인되어 있었고, 성삼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보좌의 여정을 가고 있었다. 그들이 본 것은 쫓기고 있는 다윗의 현실이 아니라, 절대불가능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언약의 여정을 가고 있는 다윗이었다.
모여든 그들 중 첫 번째 사람들은 ‘환란 당한 모든 자’들이었다. ‘환란’으로 번역된 מָצוֹק (mātsôwq 마초크)는 “환난, 가난, 고통, 비탄, 고민, 고난, 우환”이라는 명사이며, 어원인 동사 צוּק (tsûwq 추크)에서 파생되었다. צוּק (tsûwq 추크)는 “환난을 당하다, 괴롭다, 곤고하다, 고통스럽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מָצוֹק (mātsôwq 마초크)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이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무엇을 해도 되는 일 하나 없는 밑바닥 인생을 말한다. 헐벗고 가난하며 굶주림과 고통으로 비참한 상태에 놓인 채, 삶의 사방이 막혀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출구를 찾기 어려운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로는 ‘빚진 모든 자’들이었다. ‘빚진 자’로 번역된 נֹשֶׁה (nw̄sheh 노쉐)는 “채무자가 되다, 빚쟁이가 되다”는 뜻으로 쓰이는 동사 נָשָׁה (nāshāh 나샤)의 단순 능동태 분사형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단순한 빚쟁이를 넘어선 재기불가능한 빚쟁이를 의미한다. 오늘날로 치면, 주식투자나 도박 등으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경매 위기에 처하거나 카드 돌려막기 등으로 신용불량자를 면하기 위해 애쓰거나, 실제로 파산신청자가 됨으로써 완전히 무너져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을 찾아왔다. 마음은 לֵב (lēb 레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 사용된 נֶפֶשׁ (nephesh 네페쉬)는 “영혼, 혼, 목숨” 등 인간의 내면에 있는 정신세계를 포괄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다.
‘원통’으로 번역된 מַר (mar 마르)는 쓰고 괴로움을 나타내는 명사로서 번뇌와 고통과 사무치는 아픔을 나타내는 단어다. מַר (mar 마르)는 “아프다, 쓰다, 슬프다, 통곡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מַרַר (mārar 마라르)에서 파생된 것으로 직역하면 “목숨이 괴로운 자, 영혼이 쓰라리고 슬픈 자, 숨쉬기조차 힘든 자”라는 의미가 된다.
쉽게 말해 요즘으로 말하자면 ‘공황장애, 우울증 환자, 조울증, 자살 충동자, 중독자’ 등 정신적 고통 속에서 무너져가는 이들을 가리킨다. 또한 감정조절이 안되는 ADHD 환자와 상처와 분노로 가득 찬 인격파탄자 등 그야말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심각하고 지극히 위험한 자들을 의미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현장에는 이처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차고 넘쳐난다. 포장된 거짓과 가슴 아픈 진실이 섞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야 하는 것이 전도자의 존재 이유다.
전도자 한 사람이 빛을 발하는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할 때, 절대불가능했던 희망없던 인생들이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다윗에게 몰려든 연약하고 영적문제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통일 왕국의 개국공신이 되었듯이, 황제를 살린 영적황제로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다만 증인 될 사람에게는 사람을 살릴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때로는 남들이 겪어보지 못한 고난을 통과해야 할 수도 있다. 사람이란 공감해야 반응하고, 반응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증거가 있는 증인이 필요하며, 증거가 있는 증인의 말이야말로 현장을 살리는 힘을 발휘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전도자의 걸음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목표를 이루어 가는 필연적인 걸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둘람에 모였던 사람들의 현실은 마초크의 곤경이었고, 노쉐에게 쫓기는 빚진 자의 현실이었으며, 마르의 쓰라림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절대불가능의 현장은 오직 보좌의 망대를 세우는 자리로 바뀌었고, 시대를 살리는 증인의 길이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통과하고 있는 고난만 보고 인생의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오늘의 깊은 고통이 내일 누군가의 상처에 답을 주는 증거가 되고, 오늘의 절대불가능이 내일 현장을 살리는 절대 가능의 증인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말심 목사 / 광주에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