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현장] 선교전환점, 아프리카 살릴 경제는 아프리카에 있구나!

[선교현장] 선교전환점, 아프리카 살릴 경제는 아프리카에 있구나!

[선교현장] 선교전환점, 아프리카 살릴 경제는 아프리카에 있구나!

학교에서 시작한 다락방이 5000 종족 순회캠프로

탄자니아 최용석 선교사 (탄자니아 임마누엘장로교회)

최용석 선교사는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현장에서 22년째 사역하며 제자들이 세워진 5000종족 현장을 순회하고 있다. 사역을 보고 받은 류광수 목사는 “경비행기 얼마 안한다. 경비행기 하나 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만큼 5000종족 현장의 밭이 크고 갈곳이 많다. 최 선교사는 최근 몇 년 사이에 12지역에 지교회를 세우는 가운데 선교전환점의 응답을 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최용석 선교사의 유쾌한 선교 여정을 시작부터 확인해 보려한다.  

경남 하동 최씨 집성촌 첫 그리스도인

최용석 선교사는 누나에게 처음 복음을 받았다. 최 선교사는 “제가 최 씨 집안 24대손인데 그러니까 2,400년 만에 제가 예수를 믿은 거죠. 우리 집안에서 첫 번째로 누나가 믿었고, 누나 때문에 제가 예수를 믿었는데..”라고 전했다. 그러다 작은 갈등으로 교회를 그만두었는데 23살에 큰 교통사고가 났다. 병원에서 눈을 떴는데 누나에게 들었던 성경구절이 딱 떠올랐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말씀이 자막처럼 지나가다가 ‘멸망’ 그 단어에서 딱 서더라고요. 제 마음에 내가 진짜 죽을뻔했구나, 멸망 당할 뻔했구나. 누나가 이야기해 준 예수님을 지금부터 진짜 믿어야 되겠다.”고 최 선교사는 결단했다. 

93년 다락방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다

사고 후 최 선교사는 열심히 교회 생활을 했다. “새벽 기도부터 시작해서 철야하고, 모든 예배를 드리고, 교회 차도 다 닦고.. 할머니 권사님들이 저를 보고 ‘아이고 믿음 좋다.’ 해주시니까 더 열심히 했죠.” 최 선교사는 기도도 열심히 했다. 삼각산, 갈멜산 기도원 등 안 가본데 없이 찾아가 비가오든 한 밤중이든 ‘주여’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최 선교사는 “하여튼 뭔가 능력을 받아야 되는데 능력이 안오는 거예요.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안 되는 거 있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이 영적 문제가 해결이 안 된 거였어요. 예수 믿는다고 종교 생활을 한 거죠.”라고 전했다. 93년 신학교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다락방 전도운동을 알게 되었다. 최 선교사는 “류 목사님 메시지를 듣고 완전히 충격받아버렸어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거예요. 내가 열심히 했던 그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나는 그동안 예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열심히 했구나!’ 깨달았죠.”라고 전했다. 

훈련에 미친 남편을 위해 1년간 영접해준 사모

그때부터 최 선교사는 훈련에 매진했다. “전도학교에 갔어요. 1강은 강태흥 목사님, 2강은 오천록 목사님이 강의하셨습니다. 참 진하게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격하게 듣고 집에 오면 이 사람(백정옥 사모)이 자고 있는 것이 괴물같이 보이더라고요. 시체같이 보여요. 그래서 깨워가지고 영접 메시지를 눈물을 흘리면서 전했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백정옥 사모는 “한 새벽 2시에 나를 깨워서 ‘당신 예수가 누군지 아냐?’ 묻는 거예요. 저는 3대째 기독교 집안인데 ‘예수가 누구냐? 그리스도를 아냐?’ 이러니까 뒤집어지겠더라고요. 처음에는 막 싸웠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선교사는 “나중에는 사모가 지쳐서 1년 동안인가? 일부러 영접을 해 준 거예요. 저는 강태흥 목사님의 십자가 메시지 있잖아요. 그대로 딱 그리고 사모는 1년 정도 그걸 영접을 해줬는데, 영접을 안 해주면 끝이 없었거든요.”라고 전했다. 백 사모는 “새벽에 눈물을 흘리면서 불신자 상태를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이 마귀 자녀였다는 걸 진작에 깨달았었다면..’ 그 한을 가진 거죠.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는데 제가 어떻게 안 해요? 그리고 빨리 자야 되기 때문에 ‘내가 못 깨달은 것 같다’고 인정하고 영접했어요.”라고 전했다. 최 선교사는 “그렇게 1년 정도 하니까 저에게 구원의 길이 확립이 되었어요.”라고 웃으며 전했다. 

청년 시절 미전도종족 선교 결단

다락방 전도운동을 만나기 앞서 최 선교사는 먼저 선교를 결단 했었다. 최 선교사가 다녔던 상도 교회는 종종 조이(Joy) 선교회의 선교사들이 방문해 특강도 하고 선교보고를 해왔다. 최 선교사는 “선교사님 중 한 명이 큰 영향을 주셨는데, 파푸아뉴기니에서 선교를 하시는 분이였어요. 성경 번역 선교회 소속으로 완전히 5000 종족, 미전도종족 선교를 하고 있었어요. 파푸아뉴기니 한 섬의 부족이 말은 있는데 글이 없는 거예요. 선교사님이 일생을 그 부족을 위해서 글의 체계를 잡고 성경을 만드시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사실은 복음을 잘 몰랐지만, ‘내가 저런 선교사님처럼 5000 종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건 하나님 앞에서 너무 보람된 인생이겠구나!’ 그런 선교사역의 비전을 붙잡았죠.”라고 전했다. 

아프리카를 결단하게 된 캠프

청년시절 잡은 ‘선교’를 다락방 훈련 속에 다시 붙잡게 되었다. 최 선교사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흑인들이 좋고 아프리카가 마음에 담겼다고 전하며 “전도신학원 훈련을 받았는데 해외 캠프를 다녀와야 되는 거예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갔어요. 거기에서 청년 때 했던 선교에 대한 기도가 막 불붙듯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얼마 후에 제가 전도 신학원 강의를 하러 탄자니아로 가게 된 거죠. 그때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붙잡고 만약에 탄자니아 선교사님이 ‘아프리카 선교사로 올 마음이 있나?’ 이렇게 질문하시면 ‘하나님의 계획으로 알겠습니다.’ 하고 딱 갔어요. 그런데 마치는 날 선교사님이 ‘혹시 선교 나올 마음이 있냐?’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담임 목사님이셨던 세계선교교회 이창섭 목사님께 상의드리고, 아프리카권역담당 세계비전교회 곽요셉 목사님과 함께 탄자니아 선교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모두의 반대를 뒤엎고 선교지로

최 선교사가 막상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말하니 가족들의 반대가 거셌다. 최 선교사의 집안은 온가족이 불신자였지만 최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들은 가족도 많았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가족도 아프리카 선교에는 모두 반대했다. 그런데 심하게 반대하는 가족들을 하나님이 하루 아침에 모두 천국으로 불러가셨다. 최 선교사는 “그 뒤로부터는 아무도 저보고 아프리카 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졌어요.”라고 회상했다. 백 사모 역시 아프리카 선교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선교사로 간다는 것은 영광이지만 ‘굳이 아프리카로 가야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핑계를 댔죠. 둘째 아들이 중이염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수술해야 된다고 그러셨거든요. 그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선교사님이 그럼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이 ‘도저히 얘는 아프리카에 가면 안 됩니다.’ 하면 안 간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얘는 잠수를 해도 됩니다.’ 그러시는 거예요. 보호막이 생겨버린거예요. 그럼 어떻게 안 가요? 그래서 사실 당시 탄자니아 공항에 처음 도착해서 찍은 사진을 보면은 가족들이 다 완전 다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요.”라고 백 사모는 웃으며 전했다. 

2004년 아프리카 선교사로 파송

여러 우여곡절 끝에 2004년 제8차 세계선교대회에서 탄자니아 선교사로 파송받게 되었다. 최 선교사는 “탄자니아에 와서 한 1년 반 정도 스와힐리어를 진짜 열심히 공부했죠. 언어가 안 되면 복음을 전할 수가 없잖아요. 언어 공부를 하면서 다락방 전도운동과 성경적인 전도, 특히 다섯 가지 기초를 많이 묵상했어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할 때, 저한테 다가온 ‘제자’의 개념은 다른 제자가 아니라 ‘다락방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 예비해 놓은 제자’ 이렇게 깨달아졌어요. 그 부분을 하려고 선교지에 왔는데 그때 제가 있던 선교지의 사역은 그게 아닌거예요.”라고 회상했다. 

선교사의 무덤 ‘킬리만자로’로

최 선교사는 갈등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한국 선교사가 없는 곳으로 가자. 그게 킬리만자로라는 지역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거기가 ‘선교사의 무덤’이라고 불리더라고요. 탄자니아에 126개 부족이 있는데 그 지역은 그 중 제일 뛰어난 마사이부족과 싸워서 이긴 차가부족들의 지역이었어요. ‘차가’ 부족은 교육에 눈을 뜨고, 경제에 아주 밝아서 돈 없는 선교사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어요”라고 최 선교사는 전했다. 킬리만자로에 가기 위해 차를 한 대 빌려서 이삿짐을 싣고 10시간을 운전해 이동했다. 가는 길에 큰 아들이 대못에 찔려서 크게 다쳤는데 변변한 병원이 없어 고생도 많았다. 최 선교사는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우리 가족들 생활도 어려웠고..”라며 구체적인 어려움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킬리만자로 현장에서 아무도 없는 노바디(Nobody)의 여정을 보냈을 것이 예상된다. 

스와힐리어 수준에 따라 열린 학교 현장

최 선교사는 킬리만자로 현장에서 매일 전도했다. 최 선교사의 스와힐리어 수준에 따라 문이 열렸는데 처음에는 초등학교에서 복음을 전했고, 언어가 중학생 수준이 되니 중학교 문이 열렸다. 최 선교사는 “그동안 배운 언어를 가지고 스와힐리어 ‘구원의 길’을 만들었어요. 그것으로 현장에서 영접 운동을 하고, ‘복음 편지’, ‘새생명 새생활’도 스와힐리어로 만들어서 영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씀 운동 하게 된 거죠.”라고 회상했다. 

모시 텍크니컬 사역 사진

‘모시 테크니컬’ 지교회 

먼저 학교의 문이 열렸다. 현장에서 영접하고 다락방하던 삭개오라는 학생이 ‘모시 테크니컬’이라는 명문 중고등학교 교사로 취직하게 되었다. ‘모시’는 킬리만자로주의 주도로 교육으로 유명한 도시다. 최 선교사는 “모시 테크니컬 교무실에서 삭개오와 기도를 하는데 저쪽에서 어떤 선생님 한 분이 관심있게 쳐다보는 거예요. 저를 부르더니 자기 집에 와서 기도를 해줄 수 있냐고 해요. 그 학교가 얼마나 큰지 학교 안에 선생님들 집이 다 있었어요. 집에 가보니 선생님에게 안나라는 딸이 있는데 백혈병 4기인 거예요. 더 이상 할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아이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복음을 전하고, 영접을 하고, 복음 편지를 읽어주면서 다락방을 하게 된 거죠. 기존교회 신자였던 선생님은 사실 ‘하나님이 왜 우리 딸에게 이런 병을 주셨는지’ 의문이었는데, 복음 편지 7과 ‘구원받은 나는 어떻게 변했는가?’를 하는 중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어요. 완전히 원색 복음이 들어가면서 ‘이런 정확한 복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 딸에게 이 질병을 허락하신 것이구나!’ 답을 얻으신 거예요. 저는 그냥 읽어만 주었거든요. 성령이 역사하시니까 안나도 얼마나 갈급하게 말씀을 받는지, 말씀이 정확하잖아요. 7과를 마치고, 안나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어요. 그런데 장례식이 완전 축제의 자리가 되었어요. 장례식을 마치고 선생님이 저를 데리고 교장 선생님을 만나러 가더라고요.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기독교 동아리가 있는데 말씀을 전할 사람이 없다고 저 보고 전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언어도 그렇고, 잘 못한다고 하니까 다른 이야기하지 말고 안나네 집에서 한 것, 그걸 해달라는 거예요. 그렇게 그 학교에 문이 열려가지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모시 테크니컬에서 만난 제자들, 탄자니아 임마누엘장로교회의 든든한 중직자와 부교역자로 성장했다. 

‘한 현장에 다 있구나!’

최 선교사는 ‘모시 테크니컬’ 현장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최 선교사는 “류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한 현장에 다 있다.’는 메시지를 그 현장에서 깨달았어요. 지금 같이 사역하는 제자들을 다 거기서 만나게 되었거든요. 그 친구들이 지금 교역자가 되고, 중직자가 되고.. 그리고 학교에서 복음 받은 아이들이 졸업하니까 전 탄자니아로 다 흩어졌어요. 탄자니아는 126개 부족 간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뺑뺑이(무작위 추첨)로 돌려서 섞기 때문에 전국의 아이들이 모시 테크니컬에 오거든요. 그렇게 전국에 흩어지고 탄자니아 밖에까지 나가는 이런 친구들이 다 문이잖아요. 그 친구들이 고등학교 가면, 고등학교 문이 열리고, 대학교 가면, 대학교 문이 열리고 이렇게 되더라고요. ‘아.. 이게 렘넌트를 통해 한 나라를 선교하는 것이구나, ’렘넌트‘가 조금만 기다리면 완전히 세계 선교하는 전략이고, 제일 빠른 선교 전략이구나!’ 제가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깨달아지는 거예요. 그때는 돈도 없고, 차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걸어만 다니면서 말씀운동 했는데, ‘그게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이고 절대계획이었더라고요. 하나님이 저를 엄청 사랑하시는구나.’ 깨달아졌어요.”라고 고백했다. 

말씀만 전하는데 귀신이 나가는 모슬렘 현장

최 선교사는 ‘카롤렌’이라는 모슬렘 지역 학교에도 들어갔다. 탄자니아 정부의 허가를 받으며 종교 시간을 통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최 선교사는 “어린이 시청각 자료를 만들어 가지고, 기타 치면서 ‘나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 찬양도 부르고, 율동도 가르쳐 주고, 그렇게 가르치는데 애들이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그쪽이 워낙 흑암 지역이라 귀신에게 시달리는 애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 애들 때문에 선생님들도 늘 고충을 격고 있었는데, 말씀을 전하는데 애들이 막 뒤집어져 가지고 거품을 물고 뱀처럼 몸을 비틀고 귀신이 나가는 거예요. 그냥 말씀을, 복음만 전하는데 일어나는 일을, 종교 담당하는 선생님이 참관하면서 본 거예요. 그 선생님이 집을 오픈해서 말씀운동을 했는데 무슬림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무슬림은 교회에 갈 수가 없지만 그 집에는 올 수 있잖아요. 그 집에 와서 복음 듣고 생명 얻은 무슬림이 많았어요.”라고 전했다. 그 집을 연 교사는 지금도 최 선교사를 돕고 있고, 교사의 아들도 공무원이 되어 복지사역 분야를 돕고 있다. 

2008년 교회 개척

2008년 모시 타운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최 선교사는 “전문대학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학장을 만나서 팀 사역 하는데 딱 마음이 열려 있더라고요. 학교가 굉장히 좋은 지역에 있었는데 교실 큰 거 하나를 마음껏 쓰라는 거예요. 거기서 개척을 한 거죠. 교실만 있지, 의자나 이런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때 이병무 목사님(광주 세계로교회)이 케냐 나이로비에 합숙 훈련을 인도하러 오신 거예요. 이병무 목사님 강의 속에 은혜 받고 나오는데 500불을 저에게 쥐어주셨어요. 눈물 나더라고요. 그걸 가지고 의자를 사서 교회를 시작했어요. 교회가 만들어지고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예배가 되어지고 기도가 되어지고 그러면서 일어나는 하나님이 역사가 많았습니다.”라고 전했다.  

버려진 뉴랜드 현장

교회가 세워진 학교 현장에서 캠프가 일어났다. 최 선교사는 “밤에 학교 경비가 있더라고요. 이 사람이 예비된 사람이에요. 무슬림 사람으로 이름이 라마단이었는데 복음을 받고 교회에 나오게 돼서 심방을 가게 됐어요. 그 지역이 ‘뉴랜드’란 지역이었어요.”라고 전했다. 백 사모는 “그곳에서 다락방을 하는데 세 평도 안 되는 방에 사람들이 미어 터지는 거예요. 버려져 있는 애들이 많았어요.”라고 전했다. 뉴랜드에는 큰 사탕수수밭이 있어 일자리가 많았다. 최 선교사는 “일을 얻기 위해 근교에 있는 5천 종족의 사람들이 다 뉴랜드로 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흙집 같은 데 거기서 살아요. 살다 보면 결혼도 하고 그러는데 애 놓고는 남자들이 도망가버리는 거예요. 여자들은 살아남아야 되니까 또 다른 사람하고 결혼을 하고. 애들이 막 섞여서 난리가 아닌데 이 애들이 그냥 희망을 잃어버렸어요. 여기는 중학교 4학년 때 고등학교를 가는 시험을 쳐요. 시험에 떨어지면 채석장이나 이런데로 가는 거예요. 학교에 가봤는데 학교에 책도 없고 노트도 없어요. 희망 없는 현장을 보면서 진짜 여기 얘들을 도와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복지지교회라는 메시지가 나왔어요.”라고 전했다. 

학업캠프와 지교회 

뉴랜드 현장의 버려진 아이들의 학업을 돕는 캠프를 시작했다. 최 선교사는 “집중 학업 캠프를 했는데 ‘우리는 공짜로 못한다. 당신들이 얼마를 낼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옥수수 1kg을 낼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건물을 하나 빌렸는데 너무 좁아서 딱 58명이 들어갈 수 있어요. 58명 애들을 받고, 옥수수 58kg을 마대자루에 세워놓고, 학업을 도와주는 팀은 우리 학생들이 있잖아요. 그 친구들이 고등학교 학생이 돼서 방학 때 와서 학업 캠프를 했는데 뉴랜드 애들이 너무 기뻐하고 희망을 가지게 되었어요. 결정적으로 그 지역 사람 마음 문을 열게 된 게 학업캠프를 마치면서 옥수수 58kg을 장학금으로 나눠 준 거예요. 하나님이 그런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그전에는 외국인들에 대한 피해 의식 때문에 우리를 경계하는 눈으로 봤는데 그때부터 마음을 열고 도와주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거기서 지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죠.”라고 전했다. 뉴랜드에는 현재 RUTC가 세워져 매주 금토일 시대와 각종 렘넌트 훈련이 열리고 있다. 

임마누엘 부산교회 팀과 함께 교육선교

2014년 선교대회에서 부산 임마누엘교회 교사팀과 만나게 되었다. 최 선교사는 “그분들이 ‘에드하트’라는 교육 NGO를 만들어 가지고 탄자니아에서 단기 선교를 확실하게 해주셨어요. 하나님의 계획을 딱 보고 5년 동안 지속해서 들어와서 나중에는 RU까지 세워진 거예요.”라고 전했다. 백 사모는 “에드하트팀이 와서 선진 교육을 해주고 복음도 가르쳐주고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떠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초등학교 7학년 때부터 훈련받고 대학까지 졸업한 후 목사가 되겠다고 한 렘넌트가 처음 나왔어요. ‘자펫’이라는 청년이에요. 자펫이 ‘내가 다른 길을 안 가고, 선교사님 밑에서 훈련을 받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는 거예요. 선교사님이 제자들에게 300명 영접운동을 숙제로 주면서 훈련시키는데요, 이 친구는 전도가 되어져요. 하나님이 사람을 갖다 붙여요. 귀신 들린 중학생 아이를 붙여주셨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기도해야지. 다락방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 아이가 치유된 거예요. 자펫도 은혜받고 그 아이도 은혜받고.. 최근에는 자펫 형이 도도마 대학 교수인데 자기가 교수로 끌어주겠다면서 다 접고 오라고 한 거예요. 자펫이 고민 끝에 자기는 복음 전하는 전도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단을 했어요.”라고 전했다. 최 선교사는 “그런 애들이 숨겨져 있었는데 한명 나오니까 밑으로 줄줄이 사탕으로 나오더라고요.”라고 전했다. 

토요핵심 메시지에 집중하는 미션홈 모습

원단 말씀대로 현장 성취

모든 역사는 말씀따라 일어났다. 백 사모는 “원단 메시지가 선포되면 그 메시지가 우리 현장에 성취가 돼요. 이번에 1천 망대라고 했잖아요. 저희 현장에 제자들이 망대로 세워지고 지교회가 열리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순회 사역을 통해 복음에 갈급한 도도마 교육대학의 샤니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백 사모는 “이분이 만나자마자 ‘렘넌트’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려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선교사님이 남은자, 남는자, 남을자, 남길자 하시면서, 왜 우리가 성경적인 전도 운동을 해야 되는지 메시지를 풀어가시는데, 그 교수 뿐 아니라 같이 따라간 제자들이 ‘아니, 우리 선교사님이 저런 메시지를 하시다니..’ 다 놀랐어요.”라고 전했다. 최 선교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샤니 교수의 마음을 완전히 열고 역사하신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정확하게 메시지가 나가고, 메시지를 받더라고요.”라고 기억을 전했다. 백 사모는 “교수에게 전화가 계속 오는데 안 받고 말씀에 몰입을 하더라고요. 같이 간 제자들이 팀 사역 현장을 직접 봤어요. 선교사님이 교회 설교로 안 해주시는 메시지를 들은 거죠.”라고 전했다. 최근 도도마 대학에 입학한 렘넌트 챨스가 샤니 교수가 있는 대학을 담당하여 지교회가 시작되었다. 최 선교사는 챨스 렘넌트에게 입학 선물로 노트북을 주며 류광수 목사의 메시지를 매주 샤니 교수와 함께 보라는 미션을 전달했는데 렘넌트가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12지역 지교회

샤니 교수 대학 지교회를 시작으로 12개 지역에 지교회가 열렸다. 백 사모는 “하나님이 문을 확 여셔서 지교회 12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어요.”라고 전했다. 최 선교사는 “작년하고 올해 선교대회 때 류 목사님이 강조하신 것이 12지역 절대망대, 세계대교구란 말씀이었는데요, 12 지역에 다 예비돼 있더라고요. 현장을 안 가니까 몰랐던 거예요. 모시에서 복음 받은 학생들이 다 5000 종족인데 방학 때 집으로 가잖아요. 그 친구들 집에 찾아가서 캠프하는 거예요. 그렇게 캠프할 생각을 하니까 설레이더라고요.”라고 전했다. 

키고마 키코라 라디오 방송국에서

아프리카 살릴 경제는 아프리카에 있다

최용석 선교사는 제자들의 집을 방문하는 순회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최 선교사는 난민이 많은 키고마라는 지역에서 순회 집회를 하는 중에 ‘데오’라고하는 교수를 만났다. “데오 교수가 강의 듣고 찾아와서 제자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알고보니까 이 사람이 부룬디 태생인데 벨기에 시민권자로 벨기에 유명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부룬디 국립대학 교수로 15년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언약이 소외된 자기 민족들, 5000 종족 복음화인 거예요. 자기 돈으로 라디오 방송국을 열고 말씀을 방송하고 있었는데 10년 하다가 한계를 만난 상황이었어요. 재작년 선교대회에 같이 나오려고 했는데, 어느 날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가니 백혈병이라고 곧 죽는다는 거예요. 기도하고 류 목사님 메시지 링크를 계속 보내주었죠. 몸이 아프니까 얼마나 갈급하겠어요. 근데 최근에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어요. 그리고는 방송국에 저를 강사로 초청해서 부룬디에 있는 중요한 목사들, 키고마 지역에 있는 제자들 모아놓고 3박 4일 집중훈련을 하는데 경비를 다 자기가 내는 거예요. 호텔도 그 지역에서 제일 좋은 호텔로 잡고 우리 전도사 2명 숙식도 준비하고, 탄자니아에서 이런 응답 처음 받아봤어요. ‘아..아프리카 살릴 돈은 아프리카에 다 있구나!’ 그때 알았어요.”라고 전했다. 훈련에 참석한 부룬디 목회자들도 자신들이 준비해서 최 선교사를 부룬디에 초청하겠다고 했다. 최 선교사는 “함께 간 제자들도 놀랐어요. 이 친구들에게 300명 영접운동을 숙제로 내주었더니 맨날 도움 받으려는 사람들만 영접시켜서 데려오는 거예요. 현장에 엘리트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 제자들도 직접 보게 되었어요. 제자들에게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된다. 도움만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아프리카 살릴 경제는 아프리카에 준비해두지 않았겠냐? 선교 역사를 새로 써야 된다.’고 말해줬어요.”라고 최 선교사는 전했다. 

스와힐리어 메시지 방송

현재 데오 교수의 케코라 방송국에선 류광수 목사의 메시지가 스와힐리어로 더빙되어 방송되고 있다. 최 선교사는 “데오 교수가 은혜 받아버리니까 류광수 목사님 메시지를 그냥 방송으로 틀자는 거예요. 저도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유튜브로도 메시지를 볼수 있지만 5000 종족 현장은 라디오가 빠르거든요. 메시지 방송 후에 광고가 나가요. 혹시 말씀이 더 듣고 싶거나 지도를 받고 싶은 사람들은 연락을 주시라고 하는데 이게 방송의 힘이잖아요. 방송국 제자가 한 명이 바로 ‘기를 드는 자’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유치원부터 복음 커리큘럼 학교 준비

최 선교사는 복음 커리큘럼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최 선교사는 “하나님이 땅을 주셔서 한 3500평 주셔서 2년 전부터 유치원을 하고 있거든요. 학교 할 수 있는 정부의 행정 프로세스도 따르고 있어서 이제 초등학교도 할 수 있어요. 그전 아이들은 잘 모르겠던데요, 렘넌트 제자들이 결혼해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저보고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 아이들이 크면서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는데 제가 그 아이들을 불신자학교에 못 보내겠는 거예요. 메시지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하라고 하시면서 학교 메시지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유치원 애들이 내년 후년 되면 졸업을 해요. 그럼 매년 교실 한 개씩만 지으면 돼요. 학교 단체 이름을 ‘렘넌트 미니스트리’로 하고 홈페이지도 만들계획입니다. 후원 시스템도 투명하게 소통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말씀에서 ‘건축 전문인’이 나왔잖아요. 말씀따라 하나하나 인도받으려 합니다.”라고 전했다.

최근 사역 사진


“선교지에 뼈를 묻는 것을 옛날 말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죽을 때까지 전도운동의 발판을 만들고 5000 종족의 밭이 크기 때문에 함께 마음 담아 나라를 담당할 교회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응답받을 핵심 기도 제목은 우리가 절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나라의 절대 망대로 딱 세워지는 거죠. 옛날 말로 하면 전 교인 요원화. 그래야 1천 망대를 세울 거 아닙니까? 각 사람 지역이 있는 곳에 일천망대를 세우는 언약 잡고 인도받으려 합니다.”라고 최 선교사는 마지막 기도제목을 전했다. 하나님은 최 선교사의 인생 속에 말씀 따라 아프리카 현장에 이정표를 세우고 계신다. 나와 우리 렘넌트이 모두 확인하고 따라가야할 이정표다. 우리의 인생을 후대 앞에 이정표로 세워가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 

[렘넌트 소식]

렘넌트 망대, 임마누엘천안교회 김미현 권사 개인전 7월 4일까지 워커힐호텔 빛의 시어터 라운지 제16회 렘넌트 망대로 세워진 임마누엘 천안교회 김미현 권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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