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무속인] 무속인에서 영적 서밋으로 세워가신 여정 – 김선희 권사

[돌아온 무속인] 무속인에서 영적 서밋으로 세워가신 여정 – 김선희 권사

[돌아온 무속인] 무속인에서 영적 서밋으로 세워가신 여정 – 김선희 권사

해운대 드로아팀과 함께(왼쪽) / 김선희 권사(임마누엘교회)(오른쪽)

“너무 감사해요. 서른아홉에 죽어야 되는데 살아있죠. 무속일 안 해도 되죠. 이 신앙생활이 얼마나 평안하고 좋은지 몰라요. 아무 데서나 기도해도 되잖아요. 엎드리지 않아도 되잖아요. 제가 귀신을 떼려고 절에 한 달 살이도 해보고 다 해봤는데요. 새벽부터 목욕 재개해야 되지, 아침에 점심에 저녁에.. 보통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못할 정도로 해야 돼요. 신앙생활은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면 언제 어디든지 정시로 무시로 기도할 수 있으니까 얼마나 평안하고 감사한지 몰라요.”라고 김선희 권사는 고백했다. 하나님은 무속인이었던 그녀의 인생을 기도의 비밀을 아는 영적 서밋으로 바꿔버리셨다.

5대째 무속 집안
김선희 권사는 5대째 무속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무속이 5대째죠. 할머니가 무속인이었고 할머니 위에 시어머니가 무속을 하셨어요. 고모가 하고 있고 제가 했으니까 5대째죠. 제가 아프면 가족들이 병원을 데려가야 되는데 검은 보자기를 씌워 놓고 진원(신에게 비는 기원)을 하셨어요. 저에게 칼을 집어 던지시고.. 저는 그게 일상적인 건 줄 알았죠. 늘 보는 것이 그런 거라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학교에서 (점)봐주고 그랬어요. 그때 신이 이미 왔었는데 제가 계속 거부하니까 27살에 전신마비로 눕혀버리더라고요. 석 달을 집에 누워 있었나? 씻지도 않고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뼈가 굳어가지고 리모컨 하나를 누르지 못했어요. 그런데 가족들이 굿만 하고 병원을 안 데려가는 거예요.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보고는 놀라서 119를 불러서 이불에 쌓인 채로 병원에 입원시켰다니까요. 1년 동안 굳었던 몸을 1년 동안 물리치료 하면서 풀었어요.”라고 김 권사는 전했다.

결혼 후 본격 시달림
김 권사는 몸이 너무 아파서 29살에 남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 후 시달림이 더욱 심해졌다. “결혼을 하자마자 양가가 딱 합쳐지는 순간부터 제가 정신이 이상해지면서 헛소리를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남편 집안이 절 (믿는) 집안이었어요. 남편을 절에서 빌어서 낳았다고 하더라고요. 시댁에 갔더니 신줏단지가 방마다 있고 시어머니가 들어가면서 빌고 나가면서 빌고, 부적 다 붙여놓고 그랬었죠. 종갓집이라 제사도 어마어마하게 많고, 우리 집도 종갓집이라 제사가 어마어마 많았는데 시집도 많았어요.”라고 김 권사는 전했다. 결혼하자마자 정신을 못 차리는 아내를 데리고 남편이 온갖 종교를 찾아다녔다. 김 권사는 “남편이 천주교 가보자 해서 갔는데 이상한 소리만 하고, 원불교에 가니까 천도제를 하면 괜찮다고 해서 몇백만 원 들여 천도제를 했는데 소용이 없어요. 유명하다는 절벽에 있는 절에 갔는데 밤이 되니까 나무에 짐승들이랑 산신령 온갖 할매가 다 앉아 있는 거예요. 눈 떠도 보이고, 감아도 보이고, 너무 힘들었어요. 집에 퇴마사도 불렀어요. 3박 4일 동안 퇴마 행위를 하는데 귀신 나가라고 팥을 어찌나 뿌리는지.. 근데 잠시 나가는 것 같다가 근데 또 금방 돌아와요. 무슨 짓을 해도 안 되더라고요.”라고 회상했다.

어쩔 수 없이 내림굿
결혼한 그해에 내림굿을 받았다. 김 권사는 “무당집에 가서 아프니까 간단하게 칠성 굿(집 안에 이어 내려오는 조상을 달래는 굿)을 하려고 했는데 (굿하는 도중에) 제가 쓰러진 거예요. 신엄마(내림굿을 해주는 선배 무당)도 감당이 안 돼 가지고,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을 부르고, 음식 다 버리고, 더 크게 내림굿을 시작한 거예요. 내림굿을 시작하자마자 제가 시체처럼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굿당 문을 열었어요. (귀신) 들어오라고. 근데 귀신의 줄이 끝이 없는 거예요. 엄청 화려해요. 고려시대, 조선왕조 500년에 있던 그 모든 높은 사람들이 다 줄 서서 내 몸으로 지나가는 거예요. 지금도 생각해도 소름 끼쳐요. 끝나고 집에 가는데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이 갔어요. 그런데 건물 곳곳에 검은 귀신이 다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집에 도착했는데 우리 집이 무속인 집으로 세팅돼 있는 거예요. 시내 장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모든 우상 재물을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들 이름 새겨갖고 다 세팅해 놨더라고요.”라고 전했다.

재앙이 계속
아파서 굿하러 갔다가 내림굿을 받고 하루아침에 무속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 권사는 “손님들이 전국에서 다 왔어요. 짧은 시간에 소문이 어떻게 났는지 몰라요. 하루는 경남 진해에서 여자 일곱 명이 찾아왔는데 친구 사주로 점을 보는데 (사주) 글자가 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죽었네?’ 그랬는데, 그 친구가 진짜 죽었더라고요. 살인을 당했다네요. 그렇게 소문이 나서 수십 명이 매일 집 앞에 줄을 서 있었는데, 줄이 끝도 없이 골목을 다 채울 만큼 서 있었어요.”라고 전했다. 손님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집안에 재앙이 계속되었다. 김 권사는 “잘되던 남편 사업이 안 되었어요. 오늘이 6월 30일이 화재보험 만기날이면 7월 1일날 불났다니까요. 사단이 그렇게 예리합니다. 불 나 갖고 다 물어주고 남편이 망했죠. 그러니까 귀신이 너무 미운 거예요. 무속인들이 왜 가난하고 못 사는 줄 알겠더라고요. 진짜 사단의 영을 받은 무당은 귀신이 못 살게 해요. 부부도 못 살게 하고, 자녀도 흩어 놓고, 반드시 가문에 장애인이 생기고, 우리 고모가 아직도 (무속 일을) 하고 있거든요. 제가 주기적으로 가서 기도하고 흑암 꺾고 하는데 그 가문에 장애인이 있어요. 저희 엄마는 39살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42살에 돌아가셨거든요. 몸이 안 좋았냐? 특별히 안 좋은 것도 없었거든요. 그냥 다 망하게 해요.”라고 김 권사는 증언했다.

소름 돋게 딸에게 대물림
결정적으로 김 권사가 무속의 길에서 마음을 접게 된 사건이 있었다. 김 권사는 “우리 딸이 2살, 3살 될 즈음이었어요. 제가 무속을 해야 되니까 딸을 안 키웠거든요. 시어머니가 키워 주셨는데 하루는 딸이 너무 보고 싶어서 한번 데리고 와 달라고 해서 딸이 처음으로 무당집에 왔어요. 근데 아이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제가 점하는 자리에 앉는 거예요. 그러더니 법당을 쳐다보고 막 고개를 끄떡끄떡하고 그러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똑같이 절을 하네요. 그거 보고 제가 충격을 받은 거예요. 그게 너무 싫었어요.”라고 전했다.

고모님의 기도
시댁 식구 중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다니던 고모님이 계셨다. 고모님이 김 권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복음이 있든 없든 저를 놓고 작정 기도를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침마다 법당문 열기가 싫더라고요. 밖에 손님들이 줄 서 있었거든요. 그런데 열어주기 싫고, 하기 싫고, 그렇더라고요. 나중에 돌아보니 ‘하나님이 시공간을 초월해 일하고 계셨구나!’ 체험했어요. 그러다가 남편 사업 건물에 불이 나면서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고, 무속을 접고 서울로 갔죠. 우리 시고모님 집에서 얹혀살게 되었는데 그때 교회를 가게 된 거죠.”라고 김 권사는 전했다.

복음 없는 교회생활이 가장 힘들었다
3년 무속 생활을 접고 처음으로 간 교회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김 권사는 “영접시켰다는 데 영접한 기억이 없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그분들이 기도할 때 내 양쪽 귀에다가 ‘예수 피, 예수 피’ 이것을 수백 번 반복하더라고요. 내용이 없고 방언를 하면서 ‘예수 피, 예수 피’ 하니까 미치겠더라고요. 교회 가면 사람들이 저를 보고 ‘귀머거리다, 눈 뜬 봉사다, 벙어리다.’ 그랬어요.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은 백지로 바뀌어요. 그리고 목사님이 말씀하는데 안 들려요. 못 듣게 해. 그리고 성경을 읽으라는데 안 읽어져요.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어떨 때 귀신이 역사하냐면 신비주의로 ‘랄랄랄랄랄라’ 이 기도를 시작하면 제가 막 졸도했어요. 교회에서 집회를 하면 강대상에 도마 위에 생선처럼 (저를) 눕혀놓고 ‘귀신아 나가라!’ 막 이것을 했어요. 귀신 힘이 세서 남자 집사님 열 명이 와서 눕혀 놨어요. 목사님께서 ‘떠나가라!’ 이러는데 저는 ‘안 간다.’ ‘가라!’ ‘안 간다.’ 막 이렇게 계속하니까 죽겠더라고요. 제가 혀를 물고 자살을 하려 하니까 주보를 가져와 꾸겨서 입에 쑤셔 놓고.. 새벽 4시까지 그랬어요. 나중에는 지쳐가지고 귀신 안 나갔는데 나간 척했어요. 진짜 그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귀신 들렸을 때보다 그때가 더 힘들었어요.”라고 전했다.

다락방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서울 생활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96년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김 권사는 “남편 보고 졸랐죠. 부산 내려가자고 도저히 안 되겠다고. 고모님이 꼭 순복음 교회에 가야 된다고 해서 114에 물어봐서 어느 목사님과 연결이 됐어요. 목사님과 사모님이 찾아와 주셨는데 보니까 순복음에서 막 제명당하시고 다락방을 시작하신 목사님(권도우 목사) 부부를 만난 거 있죠. 목사님 어머님이 절을 하셨던 분이었어요. 그러니까 영적인 것을 너무 잘 아시는 거예요. 저에게 매일 다락방을 해주셨어요. 저는 매일 도망 다녔고.. 어떨 때는 목사님 멱살 잡고, 침 뱉고, 어떨 때는 막 맨발로 뛰쳐나가고 온 동네가 덜썩덜썩할 정도로 난리를 치고.. 그렇게 복음 편지부터 다락방을 하면서 복음을 받고 신앙생활이 시작됐어요.”라고 당시 기억을 전했다. 권 목사는 6년을 지속하며 김 권사를 기다렸다. 지금은 선교사로 있는 권 목사는 “김선희 권사님을 돕는 사역은 동병상련의 마음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네요. 저도 우상숭배 하는 가문에서 영적인 죽음의 문턱 앞에서 복음을 듣고 치유된 사람이라 누구보다도 영적인 어려움과 고통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기에 지속해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김선희 권사님이 교회와 성도님들 앞에 더욱 겸손히 좋은 평신도 사역자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김 권사가 다락방하는 과정 속에 남편이 먼저 복음을 받았다. 김 권사는 “남편이 먼저 1차 합숙 받고, 훈련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가기 싫은데 토요일마다 우리 갓난아기하고, 딸내미하고, 저를 억지로 데리고 핵심 가고, 교회를 가기 싫어하니까 저를 업고 다니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주일 학교 부장도 하고 애들을 봉고차로 실어 나르기도 하고 헌신을 많이 했었죠.”라고 전했다.

해운대 사역자 다락방 모습

김 권사는 스스로 복음 편지를 계속 반복했다고 고백했다. “제가 복음 편지를 한 여섯 번 정도 반복했어요. 세어보지 않았는데 그 뒤로도 그냥 계속 반복했거든요. 제 뇌가 그전에 99.9% 사단에게 빼앗겨 있었다고 하면 다락방 할 때마다 제 뇌를 조금씩 찾아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되찾은 것이 한 50% 이상 됐다 싶을 때 예수님을 내 안에 영접했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진짜 인격적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구나!’ 그러니까 온몸에 전율이 돋으면서 모든 사단이 떠나는 느낌, 저만 알잖아요. 신앙생활 시작한 지 3년쯤 되었을 때예요. 지금도 저는 사역 현장 가면 제일 먼저 복음 편지부터 해요. ‘영적으로 힘들다, 신앙생활 하는 중에도 힘들다.’고 연락이 오면 ‘복음 편지부터 다시 시작해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복음 편지 지속하면서 치유받았기 때문에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김 권사는 전하며, 말씀 안에 붙어만 있었다고 말했다. “요한복음 15장에 나는 포도나무요, 가지니..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냥 붙어만 있었어요. 신앙생활 한지 25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붙어만 있었어요. 제 모습이 어떻든, 많은 사고도 있었고, 아프기도 했고,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복음 안에 그냥 붙어 있기만 했습니다.”라고 김 권사는 전했다.

계속되는 영적싸움
영접 이후에도 영적싸움은 계속되었다. 김 권사는 “신앙생활 하는 중에 많이 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셨잖아요. 다 하시고 끝이라고 하셨잖아요. 마태복음 16장 16절 말씀의 언약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각인, 뿌리, 체질이 안 되면요, 생각으로 순간순간 사단이 속입니다.”라고 고백했다. 그동안 김 권사는 중요한 응답을 앞두고 몸이 아프기도 하고, 교통사고가 나기도 했다. 덕분에 24시 기도하는 서밋이 될 수밖에 없었다. 김 권사는 “24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게 되었죠. 그래서 예배 지속하고 말씀 공부 지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속이 안 되었으면 이렇게 회복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힘들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거든요. 아파서 시달릴 때 와서 집에서 설거지 해주시고 아이들도 챙겨주시고 너무 고맙고 감사하거든요. 그런 분들을 하나님이 계속 보내주셨습니다.”라고 전했다.

모든 훈련 참석
김 권사는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이 훈련 속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김 권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훈련이 없었다면 제가 과연 이렇게까지 신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싶고요. 많은 유혹에도 여러 가지 사건과 문제가 있어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훈련 때문입니다. 말씀이 각인, 뿌리, 체질이 되면 어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 예배가 너무 중요하고 집회 훈련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느 훈련이든 전도 합숙까지 계속 인도를 받았어요. 경제가 어렵고 힘들 때도 훈련을 놓고 기도하면 그다음 날 돈이 생겼어요. 그 정도로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 것 같아요. 모든 훈련을 거부감 없이 다 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살길이니까요.”라고 김 권사는 고백했다.

금정구 드로아팀 모습

기도를 위한 싸움
말씀도 듣고, 훈련도 받았지만 기도가 되어지지 않았다. 김 권사는 기도를 위해서는 힘썼다고 고백했다. 김 권사는 “제일 숙제가 기도였어요. 그래서 일부러 아침마다 앉았죠. 억지로 했어요. 아파도 앉았어요. 교통사고가 나고, 수술도 여러 번 하고,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는데 그냥 그거 했어요. 3오늘을 위해서 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말씀을 녹취하고, 요약해서 기도 두세 마디 정도 정리해 가지고 기도합니다. 정리한 그대로 읽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랬습니다.”라고 전했다. 특히 조용히 신앙생활을 지속했다. 김 권사는 “조용히 신앙생활을 했어요. 제가 무속인이었던 것이 알려진 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나는 신앙생활만 잘하자, 붙어 있자.’ 그 마음으로 했어요. 찬양할 때 치유가 많이 됐는데 성가대 하면서 정말 치유 많이 됐습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잖아요. 정말 기도 안 될 때는 찬양 그냥 틀어놨습니다. 치유는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길지, 짧을지는 장담 못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치유됩니다. 제가 치유됐으니까요.”라고 전했다.

왼쪽부터 남편 이강철 집사, 김선희 권사, 아들 이민재 청년, 딸 이예진 청년

가족 복음화
하나님은 김 권사의 가문을 살리셨다. 김 권사는 “우리 집 안에서 저를 다 보고 있어요. 예전에는 ‘교회 다녀도 왜 그렇게 아프냐?’ 이 소리를 들었거든요. 지금은 그렇게 안 봅니다. ‘교회 다녀서 애들도 잘 되고 남편도 잘되나 보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조금씩 퍼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동생이 영접했는데 신앙생활은 아직 안 합니다. 조카들도 교회에 다 데리고 왔거든요. 올해부터 친정에 제사가 없어졌습니다. 시댁은 진작에 제사 없앴고, 이제 우상숭배하는 고모만 복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속인 가문에서 제사가 없어졌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 앞에 최고로 영광 돌리고 앞으로 세 가지 뜰이 있는 성전이 빨리 세워지기를 기도하고 있고, 또 237 5000 종족으로 우리 후대들이 다 뻗어 나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남편의 사업도 회복되었다. 김 권사는 “사업 늘 안 되다가 시간표가 되니까 하나님이 갑자기 축복해 주셨습니다. 코로나 때에 하나님이 만남의 축복을 주셨어요. 이때까지 자기 돈 투자하고 했던 일은 다 안 망하고 막 딱지 붙이러 오고 그랬어요. 잘 됐다가, 안 됐다가 사이클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했는데 이번에는 고정 수입이 생기고 저도 안정감을 찾고 무조건 전도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드로아팀 무속현장 캠프 (왼쪽, 가운데) / 무속캠프 후 포럼 (오른쪽)

드로아팀 언약
“류광수 목사님께서 제가 임직받을 때 로마서 16장 15절 말씀을 주시면서 드로아 팀을 얘기하셨어요. 행13:1~4의 무속팀 만들라 하셨고, 흑암이길 영적서밋을 언약으로 주셨어요. 그때가 2014년도였거든요. 그 언약을 아직 붙잡고 있는데, 지금 이렇게 성취되고 있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지난 주에는 ‘3캠프, 근원적 힘얻으라’는 미션을 주시면서 성령인도받으라 하셨습니다.”라고 김 권사는 전했다. 최근 하나님은 김 권사에게 신 받기 직전의 사람들을 계속 붙여주시고 계신다. 김 권사는 “무속 받기 직전인 사람, 몸 안에 용이 주인 되어 있는 사람, 다 신 받기 전인 사람 4명을 최근에 보내주셔서 영접을 했어요. 지역에서 모임을 하면서 흑암이 무너지니까, 그곳에 장소와 일과 사람이 있다 보니 사람이 계속 연결되고 있습니다. 영접한 사람 중 한 분은 다락방이 지속이 안 돼요. ‘이 사람 나하고 똑같구나!’ 그 생각이 들었어요. 몇 년 걸린다고 보고 같이 하는 사역자에게 ‘절대 힘 빠지면 안 된다. 이 사람은 1년 있다가 다시 와서 살려달라 할 수도 있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라고 김 권사는 최근 받은 응답을 전했다.

전도자 류광수 목사와 면담 후

평생기도제목 무속센터
“제 평생 기도 제목이 다섯 가지 시스템 세우는 것과 무속 센터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들이 무속 일을 놓고 나오면 경제력이 없어요. 그리고 이미 육신의 질병도 가지고 있어서 치료도 받아야 되잖아요. 영적인 치유가 1순위인데 나머지도 도울 수 있는 여력이 돼야 돼요. 그래서 제 평생 기도 제목이 무속센터예요. 그리고 전체적인 기도 제목은 237 5000 종족 살리는 일에 우리 자녀들이 참여했으면 좋겠고, 또 복음 안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지만 잘 더 세워지길 바라고 있고요. 그다음에 세 가지 뜰 성전 건축에 대한 기도 제목을 갖고 있는데요, 성전 건축을 놓고 좀 더 집중해서 기도하기를 바라고, 세 번째는 무속인 살리는 팀 구성과 임마누엘 교회에서부터 무속사역팀 구성이 잘 돼서 지역 상관없이 계속적인 전도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김 권사는 기도제목을 전했다.

“감사밖에 없습니다. 빨리 죽어야 될 팔자가 완전히 뒤바뀌어서 이렇게 지금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있고, 또 복음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후대도 축복해 주시고, 이제 진짜 내가 죽고 3집중, 3시대, 3응답을 아침마다 해서, 777 각인이 완전히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만 하고 있어도 전화가 와서 내가 어디든 갈 수 있는데 어디든 가서 원색 복음만 전하고 그래서 교회화까지 될 수 있도록 돕는 지속할 사역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김 권사는 고백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전도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은 김 권사를 무속인 가문에서 건지시고 기도가 되어지고 전도가 되어지는 여정을 걷게 하셨다. 동일한 은혜를 언약의 여정을 걷는 모든 전도자에게 주시고 계시는 성삼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드린다.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