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피림 현장 정복할 그날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전도자

네피림 현장 정복할 그날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전도자

네피림 현장 정복할 그날을 확신하며 기다리는 전도자

“제가 무속인들 만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커피 마시다가, 밥 먹다가 무당 된 것이 아니지 않냐? 나도 그랬다.’ 그러면 그분들이 ‘알면서 왜 왔냐?’고 그러거든요. ‘알기 때문에 기도하다가 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당신 영혼들을 너무 사랑해서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 그런 얘기를 합니다. 지금도 관세음보살로, 황엄성주로, 지장보살로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예수께로 돌려달라고 울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속인들이 돌아오면 그분들과 원네스를 이루고 함께 임마누엘을 누리면서 위드의 축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제가 한 분 한 분 놓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항상 제 가슴을 뜨겁게 하십니다.”라고 돌아온 무속인 정윤자 권사는 기도제목을 전했다.

정 권사는 대대로 무속인을 하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신어머니(자신의 신을 전수해 주는 선배 무당)가 제 외할머니시고요. 어머니는 자기 자녀를 무속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점사(점을 치는 행위)를 보지 않는 무속인이셨어요. 그런 상태로 저를 낳게 되고, 저는 말을 배우면서 점을 보기 시작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태어날 때부터 귀신과 함께 한 정 권사는 어릴 때부터 귀신의 말이 들려 초등학교 4학년 때 신굿(신내림을 받는 내림굿)을 하고 점을 봤다. “귀신이 무당한테 주는 말을 공수라고 하거든요. 공수를 받아서 점을 보는 게 점사인데, 초등학교 때부터 점사가 잘 맞아서 괴로웠습니다.”라고 정 권사는 전했다. 친구들에게 점사로 전달하는 내용은 ‘친구 아버지가 곧 사고를 당한다.’든지 ‘어머니가 아프게 될 거다.’라는 등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점사가 맞을 때마다 친구들은 정 권사를 이상하게 보고 꺼려했다. 그래서 정 권사는 친구들에게 점사를 말하지 않으려고 버텼는데, 그럴 때면 간질이 일어나 쓰러지곤 했다.

정 권사는 무속인의 삶이 무엇보다 싫었다고 고백한다. “저는 무당이 싫었어요. 저희 외할머니가 무속인이셨는데, 식사하시다가도 신기가 오면 밥상을 엎어버리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외할머니가 굿을 하고 들어오시면, 굿판에서 썼던 징 안에 쌀과 돈과 좋은 과일을 수북하게 갖고 오셨어요. 그런데 외할머니 모습이…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제 눈에는 정상으로 안 보였어요.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라고 정 권사는 말했다. 무속인이 되기 싫은데, 귀신 소리는 계속해서 뚜렷이 들렸다. 정 권사는 “바닷가에서 파도가 치면, ‘윤자야 들어오너라 따뜻하다. 높은데 올라가면 뛰내려 봐. 사람들이 몰려와서 너를 받아줄 거야.’라고 (귀신이) 말하고, 벽을 보고 있으면 그 벽에서 짐승이 형상이 나오고…. 그런 게 너무 싫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무속인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 어릴 때부터 경험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정 권사는 “내가 어떻게 하면 무속을 안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나보다 센 집에 시집을 가면 되겠구나!’ 생각을 했어요. 최 씨가 세다고 그러잖아요. 17살에 최 씨에게 시집을 갔는데 가서 보니 시아버지가 법사인 거예요. 무당 되기 싫어서 갔는데 중을 만난 거예요. 첫째 아이를 낳고 젖 맥이다가 내복 바람으로 (귀신) 소리 듣고 끌려 나갔어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돌아다니다가 하루 반 만에 왔어요.” 정 권사는 당시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서 잤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둘째 아이를 낳고도 강원도 시댁에서 나와 아무 차나 타고 갔는데 정신 차려 보니 부산으로 와서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정 권사 자신만 시달리면 참을 수 있겠는데 온 집안에 재앙이 덮쳤다. “제 동생이 농약 먹고 자살을 했어요. 아버지는 폐암에 걸리셨고, 어머니가 거대세포 종양이었어요. 그걸 고치러 할렐루야 기도원에 갔는데 어머니가 ‘윤자야 여기는 귀신이 너무 많이 날아다녀서 못 있겠다.’ 그러시더라고요. 제가 그냥 하늘을 보고 ‘부처님 죄송합니다. 제가 불자인데 여기 왔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나는 당신하고는 관계없지만 내 부모를 고치려고 여기 왔습니다.’라고 기도했었어요.”라고 정 권사는 전했다. 길을 모르니 답 없이 헤매는 삶을 산 것이다. 정 권사는 “제가 (신 받기를)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내 주변에는 계속 저주 재앙이 임하는 거죠. 제가 (귀신에게) 무릎 꿇을 수밖에 없도록 환상과 환청을 계속 보여주었어요.”라고 당시 고통스러웠던 삶을 전했다.

집 안에 계속되는 재앙 때문에 신을 안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정 권사는 “19살 때 마지막으로 굿을 했어요. (귀신을 받기 위해서) 대를 잡아야 되니까 저희 어머니가 잡았어요. 저를 (무당) 시키기 싫어서…. 저희 어머니가 대신 잡았는데 자기 키보다 석 자 높은 대나무를 손바닥에 올리고 춤을 추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 외할머니가 제 손을 잡으시고 ‘저거는 니가 해야 되는 거다. 엄마가 감당이 안된다.’라고 하셨어요. 외할머니 눈물을 보고 제가 대를 잡았어요. 잡는데, 저도 모르는 힘에 이끌려서 확 들어서 뿌리쳤어요. 저는 그때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셨지 않나 해요. 제가 그때 하나님을 몰랐지만 ‘나는 무당이 되기 싫어요. 나는 정말 무당이 되기 싫어요.’라고 기도했는데, 이 소원을 하나님이 들어주셨던 것 같아요. 대를 던지고 굿판을 엎어 버렸어요.”라고 회상했다. 정 권사가 신을 받지 않자 굿판은 난리가 났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정 권사를 제압하고 남편이 대신 대를 잡아 귀신을 신줏단지(귀신을 담아두는 항아리)에 넣는 의식을 했다. 신줏단지를 집에 두었는데 귀신의 소리가 계속 들렸다. “새벽 3시 반 만 되면 (귀신이) ‘옥수를 언제 올려라, 언제 빌어라.’는 걸 공수를 줘요. 참…. 하기 싫은데 억지로 했죠.”라고 정 권사는 회상했다.

구원받은 후 어느 해 추석

신줏단지를 섬기면서도 제발 신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빌며 살던 어느 날, 올케 친구가 놀러 왔다. 정 권사는 “올케 친구가 우리를 만나러 오는데 길이 혼란스럽더랍니다. ‘아! 내가 오늘 놀러 가는 것이 아니고 정윤자 씨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고 있구나’라고 깨달아졌대요.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 사단 결박하고 저한테 와서 저에게 해적선 비유를 하면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갔어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올케 듣지 못하고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전도를 하냐? 이기주의냐?’ 등등 이런 말로 공격을 하다가 소금 뿌리고, 욕을 바가지고 퍼붓고 쫓아 보냈어요.”라고 전했다. 역사는 정 권사가 혼자 있던 새벽에 일어났다. “저는 제가 기억하는 한 웃으면서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항상 베갯잇을 적시고 잤어요. ‘내가 왜 태어났을까? 어디서 왔을까? 왜 이렇게 살아야 돼지?’ 이런 갈등을 늘 했던 거 같아요. 그날도 잠을 못 자고 새벽 5시쯤 돼서 침대에서 내려와서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예수쟁이가 말하는 하나님 살아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으면 아.. XX 나도 살려 보이소.’ 그랬어요.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소. 예수님 마.. 내 마음에 들어와 뿌이소.’ 이렇게 말하고 잤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씩 웃고 잤어요 얼마나 행복하게 잤는지 몰라요. 가위 안 눌리고, 꿈도 안 꾸고, 선몽도 안 보고 진짜 아무것도 안 듣고 그야말로 편안하게 안겨 잤어요.”라고 정 권사는 전했다.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말하며 다가온 정 권사를 하나님은 말없이 안아 주셨던 것 같다. 그렇게 평안하게 자고 일어나 정 권사는 혼자 다시 한번 더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회상했다.

영적 전쟁 속에 말씀을 듣다 

정 권사가 혼자 영접한 지 한 달 후, 소금 맞고 쫓겨났던 올케 친구가 다른 성도들과 함께 다시 왔다. 정애순 권사를 비롯한 태종대 다락방 팀이 한 달 동안 정 권사를 위해 기도하고 찾아온 것이다. 정 권사는 “하나님이 참…. 제가 시간이 지나고서 깨닫고 나서 보니 얼마나 감사한지…. 생불신자를 전도하려고 다섯 분이 차를 준비해서 찾아오신 거예요. 그분들이 딱 왔는데 제 눈에는 무당이 들어오는 거로 보였어요. 쪽머리 딱 해 가지고 왔는데, ‘아…. 보통 대가 센 사람이 아니네….’ 제가 그렇게 보고 있는데 우리 올케가 정중하게 ‘형님, 저하고 잠깐만 뒤에서 얘기 좀 합시다.’ 그래요. 그러더니 다섯 명이 저를 다 우여싸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36년 동안 제가 해적선에 타고 있었는데, 이 해적선에 타고 있는 사람은 밥을 잘 먹어도 죄요. 잠을 잘 자도 죄요. 착해도 죄요. 다 죄라는 거예요. 내가 속으로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랬었어요.”라고 정 권사는 전했다. 정 권사는 혼자 영접을 했으면서도 이상하게 전도자들이 다시 찾아와 복음을 전할 때는 마음을 닫고 공격적으로 대했다. 그동안 절에서 배운 음양 이치론과 다른 여러 이론을 들어 막 공격을 하고 있었다. 정 권사는 “그런데 찰나적으로 제가 절에서 봤던 실망스러운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무릎을 딱 꿇었어요. 무릎을 꿇으니까 복음을 전해주시는 분이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사주, 팔자, 운명에서 해방받는다’는 거예요. ‘사주, 팔자, 운명에서 해방을 받아? 내가 그리 굿을 많이 해도 해방이 안 됐는데 어떻게 사주, 팔자에서 해방을 받아?’ 제가 속으로 생각을 했었어요.”라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그분들이 예수님이 1996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당신하고 그분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이면 하나님의 딸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딸이 되면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 그러면 사주, 팔자, 운명에서 어떻게 해결되는지 알게 해주신다고 말하며 복음을 전하는데 저도 모르게 사주, 팔자, 운명에서 해방된다는 이 말이 망치에 얻어 맞은 것처럼 딱 뇌리에 박혀서 기도해 주세요. 그랬어요.”라고 회상했다.

영접과 동시에 끝 

그날 전도팀들과 함께 영접기도를 했다. 정 권사는 “‘사랑의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몰라서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지금 내 마음 문을 엽니다.’라고 하는데, 시커먼 게 확 나가는 느낌이에요. ‘어 이게 뭐지?’ 이러면서도 질문하지 않고 그냥 계속 기도를 따라 했어요. 그런데 행복, 평안함, 이런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계산법으로 내 속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끝없이 밀려오는 행복이…. 나중에 말씀을 배우다 보니까 ‘이 땅에서 얻는 평안함은 하늘에서 주는 평안함과 다르다. 진리를 알면 자유케 된다.’고 알려주셨어요.”라고 정 권사는 고백했다. 영접과 함께 9년이나 앓았던 중풍이 나았다. 정 권사는 “중풍에 걸리고 신침도 맞고 웅담도 해 먹고, 사막 전갈도 해 먹고 그랬는데 낫지 않았거든요. 영접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딸로 일평생 살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데 시커먼 게 나가면서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중풍이 나았어요. 동시에 제가 그토록 고통받던 7~8가지 질병들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거부하던 귀신의 소리가 안 들렸어요. 명령하는 소리가 안 들리니까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속에서 올라오는 행복과 기쁨과 그 편안함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아! 이 저주가 끝났구나’ 확신이 확 들었어요”라고 정 권사는 전했다.

2025년 매주 무속인 현장 캠프를 통해 많은 무속인들을 만났다.

돌아온 무속팀(드로아)은 전국순회 캠프전도를 지속했다.

훈련 속에 깊어지는 구원의 감사 

1996년 정 권사는 처음으로 교회에 왔다. 예배와 훈련 속으로 들어갈수록 구원의 감사가 깊어졌다. 정 권사는 “목사님들이 성경을 풀어서 가르쳐 주실 때 말씀이 깨달아졌어요.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하나님이 앞에 죄송했던 게 뭐냐면 지렁이보다 못한 저를, 죄 많은 저를, 하찮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거예요. 성경에 무당을 쳐 죽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이 저와 의논하지 않으시고 저를 사주, 팔자, 운명에서 구원해 주셨어요.”라고 전했다. 구원의 감사 속에 하나님은 전도의 마음을 주셨다. 정 권사는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신 것처럼 다른 무속인들도 그들과 의논하지 마시고 그들을 구원하는 데 저를 사용해 주십시오. 정말로 눈물로 기도 했어요.”라고 고백했다.

문제마다 그리스도 고백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정 권사에게 자주 넘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정 권사는 “고난과 감당할 시험만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어려움 올 때가 있잖아요. 그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예수님, 아직 안 가셨죠? 지금도 계시죠?’하고 영접해서 모셔 드렸어요. 하루는 예수님에게 ‘계속 주인으로 고백해도 돼요?’라고 질문했는데 예수님이 제게 ‘아침 묵고, 점심 안 묵냐? 점심 묵고, 저녁 안 묵나?’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더 멋있는 신앙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랬는데 말씀을 배우다가 마태복음 16장 16절 말씀을 알게 하셨어요. 베드로의 고백, ‘내 주인은 그리스도시요,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지금 나와 함께 계시죠? 내 주인은 하나님 만나는 길입니다. 내 주인은 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내 주인은 귀신을 박살 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고백을 수시로 했어요.”라고 전했다.

삶을 치유하시는 여정 

하나님은 정 권사의 삶을 천천히 치유해 나가셨다. “저는 그냥 24시간 관세음보살이 습관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말을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바꿨는데 제가 행복해지기 시작했어요. ‘예수는 그리스도’ 화장실에서도 ‘예수는 그리스도’, 식사하면서도 ‘예수는 그리스도’ 이것만 했어요.”라고 정 권사는 고백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말씀 따라가는 삶도 회복하셨다. 정 권사는 “핵심(예배)을 드리면, 답이 보여요.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고 보이고 주일날이 되면 ‘그게 메시지였구나! 여정이었구나!’라고 깨달아지거든요. 제가 불신자 때는 늘 염려, 걱정이 많고 늘 시달렸다면 새신자 때는 들떠서 속는 거 절반, 들뜨는 거 절반, 은혜는 10% 이랬다면, 지금은 문제가 문제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네피림 현장 치유하는 증인 

누구보다 네피림 현장을 잘 아는 정 권사에게 하나님은 정신질환자들을 연결해 주셨다. 정 권사는 “그 친구들이 있어서 제가 더 깊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역하면서 저도 같이 성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2025년부터 무속 현장 살리는 드로아 선교국이 세워지고, 드로아 지교회가 세워졌다. 매주 무속인 현장에서 캠프가 지속되고, 매일 밤 10시 다락방이 지속되고 있다. 정 권사는 “괴정 시장에 가면 무속촌이 있는데 무당집이 한 40 몇 개가 있어요. 지난여름에는 무작위로 들어가서 무당을 만났고, 지금은 겨울이니까 아무래도 밀폐되어 있잖아요. 여리고 현장을 계속 돌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무속인을 향한 마음 

오랜 시간 무속 현장을 마음 담고 전도하며 정 권사는 깨달아진 것이 있다. “어떤 무속인은 영접했어요. 영접했는데, 같이 기도하고 응답도 받았어요. 그런데 그 무속인이 ‘나는 도저히 이 길이 아니야. 지리산 가서 한 번만 더 기도하고 그때도 아니면 돌아올게.’하고 간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무속 현장을 계속해서 돌면서 하나님이 제게 어떤 것을 깨닫게 하셨냐면요, 흑암이 꺾어져요. 악한 영의 존재가 무력화 되어져요.”라고 정 권사는 고백했다. 정 권사는 “구원받기로 작정 된 자는 저처럼 고난받지 않고 속히 돌아오는 귀한 축복을 누렸으면 참 좋겠습니다. 영적 세계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알지 못하는, 진짜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사주팔자 운명에 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나님 만나는 길입니다. 저는 정말 무속인과 그 후대와 그 가정을 사랑하고 살리고 싶고, 돕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참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말하는 무속인과 그 가정과 그 후대가 살리는 네피림 전문 치유 사명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전했다. 누가 무속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언약이 아니고서는 갈 수 없는 노바디(Nobody) 현장이다. 오늘도 무속인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그 언약의 여정대로, 네피림 현장을 마음 담은 제자들을 통해 살리는 여정을 이루고 계신다. 네피림 현장을 정복하게 하실 전도자의 여정이 기대된다.

드로아 선교팀이 매주 무속인 현장을 마음 담고 예배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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